목적
현대의 피임법이 개발되기 전까지 전 세계에는 헛웃음이 날 만큼 황당한 피임법이 존재해왔다. 고대 중국에서는 피임을 위해 뜨거운 수은을 마셨고 비슷하게 고대 그리스인들은 대장장이가 달군 금속을 식히는 데 사용한 물을 마시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악어의 배설물과 꿀을 섞어 질 안에 삽입했다. 놀랍게도 이런 괴상하고 말도 안 되는 피임법은 고대에서 그치지 않는다. 믿고 싶지 않지만, 오늘날에도 그 맥을 잇는 현대식 괴상한 피임법이 존재한다.
현대식 피임(인 척하는 방)법들
현대에는 가장 기본적인 물리적 피임법인 콘돔과 페미돔 외에도 경구피임약, 포궁 내 피임 장치, 정관 수술 등 안전하고 검증된 피임법이 있다. 이 피임법들만 잘 지켜도 계획하지 않는 임신을 예방하면서 즐거운 성생활을 즐길 수 있는데도 세상엔 언제나 정론 대신 변칙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그 변칙적인 피임법에는 과학적·의학적 증거도 없을뿐더러 피임 효과도 없다는 것이다. 마치 ‘빨간 펜으로 이름을 쓰면 죽는다’, ‘화상엔 된장을 바르면 낫는다’ 같이 미신이나 민간요법처럼 쓰이는 현대의 이상한 피임법에 대해 알아보자.
🙅♀️ 여성의 오르가슴을 막아라
‘여성이 성관계 중 오르가슴을 느끼지 않으면 임신이 되지 않는다’는 이 속설을 믿는 사람들은 여성의 오르가슴이 정자를 난자가 있는 곳으로 밀어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르가슴과 정자의 운동은 과학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임신하는 데 필요한 것은 정자와 결합한 난자가 포궁 내막에 착상하는 것. 그것뿐이다.
오히려 오르가슴과 임신의 상관관계는 여성이 아닌 남성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성은 성적으로 흥분해 발기해야만 정자를 내보내 생식할 수 있지만, 여성은 성적 흥분, 오르가슴 없이도 생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잘못된 속설은 여성의 오르가슴 불평등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니, 잘못된 속설로 여성의 자유로운 성생활과 오르가슴을 느낄 권리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 첫 경험에는 무조건 임신하지 않는다?
이 얼토당토않은 속설은 여성의 처녀막(질 입구 주름)과 처녀성(성 경험 없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속설을 믿는 사람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성 경험이 없는 여성의 처녀막이 첫 성교를 하는 동안 파열되면 출혈이 생기는데, 이 출혈과 함께 질 내의 정자가 밖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임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속설에는 몇 가지 오류가 존재한다.
첫 번째, 여성의 처녀막(질 주름)은 파열되어도 출혈이 없을 수 있다. 질 삽입 성교 시, 질 주름은 파열될 수도 있고 파열되지 않을 수도 있다. 게다가 파열된다고 하더라도 출혈이 나지 않을 수 있다.
두 번째, 설사 질 주름이 파열되면서 출혈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질 내에 있는 정자가 모두 출혈과 함께 질 밖으로 배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즉, 성관계 경험 여부와 관계 없이 피임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임신할 수 있다.
🍼 모유 수유 기간 = 자동 피임?
모유 수유 중에는 체내에서 유즙분비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 호르몬은 배란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모유 수유 기간에는 무배란성 무월경이 가능하다. 특히 모유 수유 첫 3개월 동안은 임신 가능성이 굉장히 낮다. 그러나 모유 수유 중에도 종종 배란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따로 피임하지 않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러므로 임신 계획이 있지 않다면 반드시 피임을 해야 한다.
🚿 질 세척으로 정자 제거하기
남성의 사정 후 정자가 포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물이나 질 세정제 등으로 질 내부를 세척해 정자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당연히 피임 효과는 없다. 사정 시 정액 분출력은 정자를 여성의 포궁경부 안으로 밀어 넣는다. 한번 포궁경부 안으로 들어간 정자는 아무리 질 세척을 해도 씻겨 나올 수 없으며, 질 세척을 할 때 생기는 압력으로 인해 정액을 질 밖으로 씻어 내기도 하지만 일부는 오히려 정자를 포궁 안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그리고 피임을 목적으로 하는 잦은 질 세척은 질 내 산도 균형을 깨뜨리고 유익균마저 없애 감염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이 방법은 오롯이 여성에게만 피임의 책임을 전가한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피임은 파트너와 함께 짊어져야 하는 것이지 어느 한쪽만 부담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 중력과 여성 상위의 콜라보레이션
이 방법은 두 사람이 모두 서서 성관계를 갖거나 혹은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자리에서 움직이는 여성 상위 같은 체위로 성관계를 했다면 특별한 피임 없이도 중력이라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힘에 의해 정자가 여성의 질 밖으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에서 기인했다. 그러나 이 믿음은 당연하게도 사실이 아니다. 분출된 정자는 포궁 근육의 도움을 받아 중력에 저항하며 빠르게 거슬러 올라간다. 설사 여성의 몸 밖으로 정액이 빠져나와 떨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사정 시의 배출 속도는 평균 시속 55~60km가량으로 이미 수정하기에 충분한 정자가 포궁 안으로 들어온 뒤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임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무지를 비판하기 전에
이 세상 어디에도 피임 상식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을 통해 하나씩 채우게 된다. 그렇게 채워진 성 지식이 잘못됐다거나 부족하다면 그것을 채우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잘못된 피임 상식을 가진 개인을 비난하기보다는 먼저 성(性)과 피임에 대해, 자신과 파트너의 몸에 대한 배울 수 있는 교육의 기회가 얼마나 주어졌는지 헤아려봐야 한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이뤄지는 금욕주의적이고 명목적인 성교육은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으므로 과거의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 관점에서 탈피한 적절하고 올바른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한다.
가르쳐주지 않은 것을 모른다고 죄를 물을 수는 없는 일이고 그래서도 안 된다. 잘못된 피임 상식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문제다.
요약
- 과학과 의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잘못된 피임 상식이 근절되지 않고있다
- 검증되지 않은 피임법 대신 올바른 피임법을 생활화해야 한다
-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는 개인에게 올바른 피임을 위한 적절한 교육을 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