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운명은 행성의 역사와 같아, 그 자체로 특별하지 않은 행성은 없으며, 어떤 두 행성도 같지 않으므로. 우리는 당신이 궁금해하는 타인의 행성을 소개합니다. 누군가의 경험과 생각, 삶에 뿌리를 둔 진짜 이야기에서 지혜를 찾아보세요. 이번에는 '나명원' 님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5살 때인가, 화장실에서 네모난 비닐에 포장된 물건을 발견했다. 잘 간직하고 있다가 퇴근한 엄마에게 가져가서 물으니 엄마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어른들이 쓰는 작은 기저귀 같은 거야.” 나는 다 큰 어른도 기저귀를 찬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 온 어린이집에 이 사실을 퍼뜨렸다(엄마 미안해). 스스로도 몇 년 후에는 그걸 사용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모른 채….
특성
: 디폴트 값
첫 월경을 시작하고부터 내 앞에는 당연하다는 듯 그 물건이 놓였다. 우리 대부분 그랬을 것이다.
스티커처럼 속옷에 붙이는 일회용 월경대, 일명 '패드'였다. 이게 나에게 잘 맞는 월경용품일까 하는 의문 따위 가질 필요도 없이, 그냥 월경을 하면 패드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선택할 것은 브랜드와 크기 정도.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다양한 월경용품을 접할 수 있다. 그렇긴 해도 여전히 패드가 가장 접하기 쉽고 많이 쓰인다. 패드가 '기본' 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에 장단점을 따져 볼 기회도 별로 없다.
편리함
: 구하기 쉽고, 쓰기 편하고, 저렴함
일회용 월경대의 장점을 요약하자면 구하고 사용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다른 제품군과 비교해 보면 이 장점이 두드러진다. 인터넷을 뒤지거나 해외에서 구매할 필요도 없고 세탁할 필요도 없으니, 다들 일회용 월경대를 기본처럼 쓰는 이유가 있다.
❤️ 쉬운 구매
일회용 월경대는 어디에나 있다. 마트, 편의점, 심지어 학교나 지하철 화장실의 자판기에서도 살 수 있다. 다양한 브랜드에서 다양한 크기의 월경대가 나오기 때문에 자신의 월경 양이나 주기, 스타일에 따라 갖추어 놓기도 쉽다.
❤️ 편리한 사용
사기도 쉽지만 사용은 더 쉽다. 포장지를 뜯고 펼쳐서 뒷면의 종이를 떼어낸 뒤 접착면을 속옷에 붙이기만 하면 된다. 처음 써 보는 사람이라도 쉽게 할 수 있다. 사용 후에도 세척할 필요 없이 둘둘 말고 휴지나 갈아 붙일 월경대의 포장지로 싸서 휴지통이나 월경용품 수거함에 버리면 끝이다.
❤️ 저렴한 비용
월경대 하나하나의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고 총 비용 예측이 쉽다. 일회용이라서 지속적으로 돈이 들지만, 대신 초기비용을 더 쓸 필요가 없다. 월경 양이나 기간에 따라, 쓰는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이삼만 원이면 한 주기를 날 수 있다
불편함
: 새고, 넘치고, 축축함
월경에는 다양한 불편함이 따라온다. 하지만 내 경우 월경과 일회용 월경대가 1+1 상품처럼 같이 찾아온 탓에, 이 불편함이 월경 때문인지 용품의 문제인지 생각해 볼 겨를은 없었다. 그냥 월경은 원래 다 불편하려니 했다.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양한 월경용품을 경험하며 월경 자체에 어쩔 수 없이 따라붙는 불편함과 제품을 바꾸면 개선할 수 있는 불편함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월경 자체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패드의 단점이었던 것을 정리해 본다.
💔 새고 넘치는 현상
월경혈 양이 많을 때면 금방 월경대가 꽉 차서 피가 넘친다. 월경대 전체가 젖지 않았어도, 질 입구에서 바로 닿는 부분이 젖은 상태로 많이 움직이면 피가 앞뒤의 빈 공간으로 이동하지 않고 그대로 월경대 날개를 타고 흘러나오는 경우도 있다. 운동을 많이 한다면 이 점이 특히 불편할 것이다.
물론 월경대를 제때 잘 교체하면 새는 문제를 줄일 수 있지만, 아무리 숙련된 월경인이라도 매시간 화장실로 달려가거나 뛰는 것도 조심하기는 힘들다. 어떤 월경용품이든 용량이 충분하고 흡수가 빠른(아니면 월경컵처럼 피를 바로 막아 주는) 제품을 찾으면 번거로운 교체를 한 번이라도 줄일 수 있다.
일회용 월경대 중에서도 몇 년 전 출시된, 기저귀와 유사한 형태이면서 속옷처럼 직접 입을 수 있는 ‘입는 오버나이트’ 제품은 자거나 가벼운 운동을 할 때 편리하다. 일반 패드를 쓰더라도 ‘위생팬티’, ‘생리팬티’ 등의 이름으로 나오는 보조용 방수 속옷을 입으면 새는 현상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 축축함과 덩어리
월경대에 피가 어느 정도 차면 피부에 직접 닿는 부분에 축축한 느낌이 든다. 덩어리진 피가 나올 때는 세간에서 ‘굴을 낳는 느낌’이라고 표현하는 불쾌한 느낌도 있다. 내 경우 이런 촉감이 젠더 디스포리아를 심하게 만들기도 했다. 월경한다는 것을 계속 자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경우에도 축축함을 쾌적하게 느끼는 여성 그런데 이것 역시 월경 자체보다는 월경대의 문제다.
유해물질 파동
월경을 시작하고 일회용 월경대만 사용한 몇 년 동안 아주 심한 월경통을 겪었다. 월경대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사실 2차 성징이 오면서 호르몬이 날뛰는 시기였던 데다가 젠더 디스포리아로 인한 스트레스도 굉장히 심했으니 꼭 월경대가 몸에 해롭지 않더라도 월경통을 겪을 조건을 많이 갖춘 셈이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집에 있는 저녁~아침 시간에 면 월경대(다회용 월경대)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월경통이 확연히 줄어들기는 했다. 선후관계와 심증만 있고 인과를 밝힐 수는 없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많다. 사용하는 월경용품에 따라 월경통이 심해지거나 월경 주기가 불규칙해지는 것 같은데, 막상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는 경험이다.
이런 의문을 가진 여성들이 적지 않았기에 2017년 ‘월경대 발암물질 파동’이 불거졌다.
여성환경연대는 시중에서 많이 팔리는 월경대 11종을 조사한 결과 모두 휘발성유기화합물(VOC)이 검출되었다고 밝혔다.
큰 파문이 일자 식약처는 국내 유통 및 해외직구 월경대 및 팬티라이너 666품목에서 발암물질, 생식독성 물질 등 인체 위해성이 높은 VOC 10종 검출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대다수에서 이 10종 중 하나 이상의 물질이 검출되었는데 “검출량이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어 나머지 VOC 74종에 대한 결과도 공개했다.
그러나 이 조사에서 사용한 방법(동결분쇄 후 가열)이 실제 월경대 사용 환경과 크게 다르다는 점, 시료를 매우 적게(0.1g) 채취한 점, 질 점막을 통해 흡수 및 대사되는 화학물질의 양에 대해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는 점 등에 대해 비판이 있었다. 또 VOC 외에 다른 유해 요인 역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2018년 환경부의 건강영향 예비조사에서 참여자들은 일회용 월경대 사용 후 월경의 양 변화, 월경 통, 월경 주기 변화, 월경 혈색 변화, 작열감, 짓무름, 뾰루지, 질염, 냄새, 외음부 덩어리, 월경 전증후군(PMS) 등의 증상을 호소했다. 일부는 월경용품 교체 후 증상이 개선되기도 했다.
환경부는 일회용 월경대가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온 것은 아니라며 추가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제안한 것뿐이라고 밝혔다. 본조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2021 년 10 월 15 일 기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