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월경용품을 붙이거나 차거나 넣을 필요 없이, 속옷 하나로 월경을 처리할 수 있다면 어떨까? 월경 속옷 얘기다. 단일 사용도 좋고 보조용으로도 좋지만 가격만은 좋지 않은 월경 속옷에 대해 알아본다.
특성 : 평생 안 쓸 줄 알았는데.. (썼다는 말)
한창 월경컵 사용을 고민할 때, 독서 모임에서 만난 어느 분이 월경 속옷을 추천해 주셨다. 일반 속옷과 똑같이 생겼는데 입고만 있으면 바로 피를 흡수해서 편하다는 것이다. 착용감도 좋고 세탁도 면 월경대보다 편하다고. 하지만 그분은 월경량이 매우 적었다. 나는 월경 첫 이틀 동안 양이 매우 많은 데다, 이미 잘못된 세탁으로 용량이 줄어든 면 월경대의 쓴맛을 본 터였다. 월경 속옷은 정말 좋은 물건 같지만, 내가 그걸 쓸 일은 평생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월경컵을 사용하고 얼마 안 되어 나는 월경 속옷을 주문했다. 양이 많은 날에는 잠을 자는 8시간 동안 월경컵 용량만으로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잘 때만 보조용으로 일회용 월경대(패드)나 면 월경대를 사용해 보기도 했지만 너무 불편하고 귀찮았다. 한 달에 양이 많은 이틀 정도 사용하기 위해 패드나 면 월경대를 여러 개 갖춰 놓는 것도 번거롭게 느껴졌다.
유명 월경 속옷 브랜드의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간단한 테스트가 있었다. 월경 주기, 기존에 사용하는 월경용품, 월경량 등에 따라 어느 제품을 어떤 식으로 입으면 좋을지를 알려 주는 방식이었다. 내 경우 예상대로 양이 많은 날에는 월경 속옷을 단독 착용하지 말고 기존 월경용품에 더해 보조용으로 착용하라는 결과가 나왔다.
대충 15만 원이 안 되는 가격에 세 장을 샀는데 만족스러웠다. 이미 월경컵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조용으로는 아주 훌륭했다. 착용감도 좋고 컵이 꽉 차도 샐 걱정이 없어서 편했다. 보조로만 착용하는 만큼 용량이나 세탁 문제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편리함 : 속옷 그 느낌 그대로
월경 속옷의 장점을 요약하자면 ‘쉽고 편하다’는 것이다. (양이 아주 많지만 않다면) 월경 중이라고 뭘 더 붙이거나 차거나 넣을 필요 없이 평상시 입는 것과 비슷한 속옷 하나로 해결이 된다.
❤️ 쉬운 사용
따로 사용 방법을 익힐 필요 없이 일반 속옷처럼 입기만 하면 된다. 교체 시에도 벗고 새것으로 갈아입기만 하면 되어 편리하다.
❤️ 편안한 착용감
착용감은 탄성이 좋은 스포츠용 속옷과 비슷하다. 월경혈을 직접 흡수하는 사타구니 아래쪽은 조금 두껍지만 전체적으로 가벼워서 입을 때는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 자유로운 활동
속옷 전체에서 바로 피를 흡수하기 때문에 피가 샐 걱정 없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단, 일반 월경 속옷을 입은 채로 물놀이를 할 수는 없다. 패드, 면 월경대 등과 마찬가지로 물을 흡수해 버리기 때문이다. 물에 들어갈 때는 탐폰, 월경컵 등 삽입형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일부 해외 브랜드에서는 수영용 월경 속옷, 일명 ‘월경 수영복’도 판매한다.
불편함 : 핵심은 양이야!
쉽고 편한 월경 속옷에도 단점은 있다. 특히 월경량이 많을수록 단점을 체감하기 더 쉽다. 내 경우 월경컵을 쓰면서 보조용으로만 착용해서 큰 불편함이 없지만, 양이 많은 사람이 다른 월경용품 없이 월경 속옷을 단독으로 사용한다면 아래의 불편함이 더욱 커질 것이다.
💔 축축함
흡수가 빨라 어느 정도까지는 거의 새 것처럼 보송보송한 편이지만, 어느 정도 이상의 양을 흡수하고 나면 축축한 느낌이 든다. 용량이 꽉 찬다고 바로 새지는 않지만 축축한 범위가 넓어지고 닿는 면에 피가 묻기 시작한다. 업체에서 말하는 월경 속옷의 용량은 보통 탐폰 3~5개, 월경컵 0.9~1.5개 정도인데, 전체 면적이 꽉 차는 수준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로는 그보다 적게 흡수한 뒤에 교체해야 한다. 사용 기간과 관리 방법에 따라 흡수할 수 있는 양도 점점 줄어든다.
💔 번거로운 세탁과 건조
제조사에 따라 추천하는 세탁 방법이 크게 다르다. T사의 경우 바로 세탁기에 돌리되 표백제와 섬유유연제를 사용하지 말라고 한다. 다른 국내외 월경 속옷 제조사에서는 대부분 찬물에 월경혈을 씻어내고 세탁하라고 한다. 국내 H사는 비누 칠을 해서 물에 담가 둔 뒤 세탁하라고 한다. 바로 세탁기에 돌리면 간단하지만, 애벌 세탁을 하거나 담가 두어야 한다면 번거롭기가 거의 면 월경대와 다를 바가 없다. T사 제품도 세탁기에 넣기 전 물에 월경혈을 씻어내야 잘 세탁되고 오래 쓸 수 있다는 경험담이 많다. 물론 나는 그냥 세탁기에 돌린다.
하지만 대충 세탁기에 돌려도 피할 수 없는 번거로움이 있다. 월경 속옷은 잘 마르지 않는다. 원단이 상한다는 이유로 건조기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널어 말려야 하는데, 완전히 마르려면 한나절은 걸린다. 아침에 세탁하면 저녁에 다시 입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넉넉하게 여러 장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 사악한 가격
월경 속옷은 보통 한 장에 4~5만 원 정도 한다. 물론 한 장으로 월경 기간을 다 날 순 없다. 다른 월경용품을 사용하며 보조용으로 착용하거나 월경량이 매우 적어 하루에 속옷 한 장으로 충분하다고 해도 세탁을 고려해 세 장은 사야 하고, 양이 보통이거나 많아서 하루에 몇 번씩 갈아입어야 한다면 더 많이 필요하다.
게다가 오래 사용하면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구매해야 한다. 흡수하는 월경혈의 양이 많고 세탁을 자주 할수록 기능이 빨리 떨어질 확률이 높으므로, 월경량이 많고 단독으로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비용이 더 많이 든다.
PFAS 논란
논란은 짚고 넘어가자. 2020년 유명 브랜드의 월경 속옷 제품에서 독성이 있는 화학 물질인 PFAS(과불화화합물)가 검출되었다는 고발이 있었다. PFAS는 종이컵이나 방수천, 프라이팬 코팅 등에 사용되는 물질이지만 체내 축적 시 유해할 수 있으며, 분해가 어려워 세탁 등으로 제거할 수 없을 확률이 높다. 해당 브랜드를 포함한 여러 브랜드에서 자신들의 제품은 유해 물질로부터 안전한 의류를 인증하는 Oeko-Tex Standard 100을 통과했다고 항변했으나, 해당 인증이 수천 가지 PFAS 화학 물질 모두를 검사하지는 않는다는 재반박이 있었다. 이 논란은 최근에 법정 싸움으로까지 번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