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컵 영업 성공한 거 처음이야.” 내게 월경컵 사용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던 친구가 말했다.
그 친구의 월경컵 추천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넘어간 사람은 나다. “모두에게 권하는데 아무도 안 쓴단 말이야.” 나도 지금은 그의 심경을 이해한다. 아, 월경컵 참 좋은데. 진짜 좋은데. 왜 거부하는지도 알아서 강력하게 권할 수가 없네. 장단점이 너무나 명확한 월경용품계 호불호의 아이콘, 월경컵을 소개한다.
특성 : 지레 겁먹은 건 아닐까
월경컵은 실리콘이나 열가소성 엘라스토머(TPE), 고무 등 탄성이 있는 재질로 만든 컵이다. 질 내에 삽입해서 월경혈이 질 밖으로 나오기 전에 직접 받아내는 간단한 원리로 월경혈을 처리한다. 피가 차면 컵을 꺼내어 비우고 씻은 뒤 다시 질에 넣으면 된다. 간단해 보이지만 나는 두 가지 걱정 때문에 월경컵 사용을 망설였었다.
먼저 직접 질에 삽입하고 손에 피를 묻히며 대량의 피를 확인해야 하는 월경컵을 사용할 수 있을까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피 묻은 패드나 탐폰은 교체했으면서 왜 그런 걱정을 했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써 보니 오히려 다른 용품보다 나은 점이 많았다. 탐폰과 마찬가지로 착용한 느낌이 아예 없었고, 탐폰보다 용량이 커서 월경 중임을 자각하는 시간이 적었다. 피를 비우는 순간도 월경대를 손으로 애벌세탁하는 시간보다 짧아 신경쓰이지 않았다.
또 한 가지 걱정거리는 내 손재주였다. 월경컵을 원래 모양 그대로 질에 집어넣기는 어렵다. 접거나 말아서 작게 만들어 질에 넣으면 컵이 펼쳐지며 제 모양을 찾는다. 이게 문제였다. 어린 시절부터 기본적인 수준의 종이접기, 실뜨기, 신발끈 묶기에서도 온갖 실패를 맛본 내가 ‘라비아’, ‘7자형 접기’, ‘펀치다운’이니 하는 방법으로 실리콘 컵을 접어 질에 넣고 펴기까지 할 수 있을까?
이 걱정은 현실이 되긴 했다. 월경컵을 들고 온갖 그림과 유튜브 영상과 gif 이미지를 전전했지만 조금이라도 복잡한 방식은 다 실패했다. 하지만 다양한 접는 방법 중에는 나 같은 똥손을 위한 방법도 있었고, 나는 시행착오 끝에 컵 착용에 성공했다.

👉 ‘라비아 접기’ 방법
1. 컵을 한 손으로 지지하고, 다른 손 엄지와 검지를 사용하여 컵 모서리의 작은 부분을 모은다. 2. 모서리를 집은 손가락을 그대로 반대쪽 손을 향해 밀어낸다. 3. 컵을 지지하던 손으로 접힌 모서리를 감싸듯이 접어준다.
편리함 : 이렇게 편할 수 있다니
월경컵에 익숙해지고 나에게 잘 맞는 컵을 선택하면서 월경컵의 장점을 체감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편한데다 장기적으로 볼 때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건강 상태 확인에도 좋다.
❤️ 편안함과 활동성 질 내부에서 직접 월경혈을 받아 모으기 때문에 축축하거나 덩어리가 나오는 느낌이 전혀 없다. 제대로 펴기만 하면 용량이 꽉 차기 전까지 피가 새지 않아 평소처럼 운동할 수 있다.
❤️ 비교적 긴 착용 시간
용량이 20~30ml 정도로 탐폰에 비해 크다. 일반적으로 월경 한 주기 동안 흘리는 피의 총량이 80ml 정도이니 양이 많은 날을 제외하고는 용량 때문에 급하게 비울 일이 별로 없다.
❤️ 돈, 시간, 노력 절약
자신에게 맞는 컵을 찾기만 하면 정말 아무것도 신경 쓸 일이 없다. 월경용품이 떨어질까 미리 사 놓거나 때맞춰 세탁할 필요 없다. 월경 때마다 컵을 꺼내어 잘 삶고 세척해 쓰다가 혹 손상·변색됐을 때만 새로 사면 된다.
❤️ 월경 패턴 확인
컵에 고인 월경혈의 양, 색, 상태를 확인하기 쉽다. 월경 패턴을 파악해 이상이 있을 때 병원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불편함 : 진입장벽 결정체
사용자가 적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월경컵 사용자가 찬양하는 장점만큼, 초심자들을 주저하게 만드는 단점도 뚜렷하다.
💔 ’골든컵’ 복불복
월경컵은 개인차가 심하다. 크기, 경도, 컵 모양, 손잡이 모양까지 사람마다 정답이 다르다. 자신에게 잘 맞는 월경컵 제품을 찾는 것을 ‘골든컵을 만났다’고 하는데, 직접 써 보지 않으면 자신에게 맞는지 알기 어렵기에 골든컵을 찾기까지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 비용이 운에 달려 있다. 처음 산 컵에 바로 정착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부드러운 컵을 써도 방광에 압박감을 느껴 컵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월경컵 한 개의 가격은 보통 3~5만원 선. 요즘은 국내 기업에서도 월경컵을 많이 만들고, 정식으로 수입하는 제품도 있지만, 그래도 국내에 유통되지 않아 해외 직구해야 하는 제품이 많다. 컵을 사용해 봤는데 안 맞는다고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릴 수도 없으니 시도를 다양하게 할수록 시간과 초기 비용 부담이 크다.
💔 살짝 번거로운 위생 관리
몸 안에 삽입하는 다회용 제품이므로 위생 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질염 등 감염 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드물지만 질에 상처가 나거나 컵을 제대로 소독하지 않았을 때 독성쇼크증후군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컵 사용 전후로 반드시 끓는 물에 삶아 소독하고, 컵을 비울 때마다 따뜻한 물과 비누로 깨끗이 씻고, 손도 철저히 씻고, 컵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통풍이 잘 되고 건조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 손톱 손질
어떻게 보면 사소하지만 네일아트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아주 안타까운 소식이다. 월경컵을 사용할 때는 질 안에 손가락을 넣어야 하기 때문에 손톱을 짧게 자르고 날카롭지 않게 다듬어야 한다. 파츠도 안 된다. 손톱이 길거나 파츠가 붙어 있으면 질에 상처가 날 수 있고, 이는 감염이나 심하면 독성쇼크증후군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오긴 온다
월경컵이 처음이라면 마주치게 될 난관이 조금 더 있다. 이것들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질내에 직접 삽입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질 입구 주름(처녀막)’이 손상된다는 헛소문(!)도 이겨내야 할 고난 중 하나다.
연습도 필요하다. 삽입 자체에 거부감이 없더라도, 컵을 접어 질에 넣은 다음 펴서 새지 않도록 진공 상태로 만드는(일명 ‘실링’) 단계 등 사용 방법이 탐폰보다 훨씬 복잡하다. 내 경우 탐폰은 2~3번째 시도만에 익숙해 졌지만 월경컵은 100% 새지 않게 제대로 착용하기까지 약 3번의 월경 주기를 거쳐야 했다.

원래 무엇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 그러니 쉬운 곳에서 시작하자. 공중화장실처럼 세면대가 따로 나와 있는 화장실에서는 비우고 세척하기가 조금 불편하다. 게다가 컵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 꺼낼 때 주변 바닥이나 옷에 피가 튈 수도 있어 초반 컵 사용은 집 화장실 등 세면대 사용이 편한 장소에서 시도하면 좋다.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적응한다면 어느새 월경컵을 전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아, 월경컵 참 좋은데. 진짜 좋은데. 왜 거부하는지도 알아서 강력하게 권할 수가 없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