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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의 역사

레즈비언의 역사

여자는 여자를 사랑한다

6min
레즈비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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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6월에서 9월 사이에 퀴어 퍼레이드가 열린다. 성 소수자들의 인권 신장과 차별 철폐를 외치며 걷는 사람들은 온통 무지갯빛으로 가득하다. 사람들이 입은 옷에서, 들고 있는 피켓에서, 행진하는 배너에서 우리는 ‘LGBTQ’ 또는 ‘LGBT’라는 단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섹슈얼(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퀴어(Queer)의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첫 번째 자리를 맡은 레즈비언(Lesbian)은 여성 동성애자, 즉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을 뜻한다.

사랑이 어찌 죄가 될 수 있나요

레스보스🏝 섬과 사포

‘Californian’이란 말은 ‘캘리포니아(California)’에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같은 원리로 ‘Canadian’이란 말은 ‘캐나다(Canada)’에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레즈비언(Lesbian)’은? 놀랍게도 ‘레스보스(Lesbos)’ 섬에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레스보스 섬 사람들이란 의미가 있는 단어가 현대에 와서 어떻게 여성 동성애자를 나타내는 대명사가 되었을까?

  • 시인 사포와 그녀의 제자들

기원전 630~612년 즈음, 그리스 동부 에게 해에 있는 섬 레스보스에서 ‘사포(Sappho)’라는 한 여성이 태어났다. 사포는 위대한 시인으로 자라났다. 많은 여성들이 시를 배우기 위해 사포를 찾았고, 사포는 그들과 사랑을 나누곤 했다. 사포는 사랑에 빠진 여성과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의 시가 말하는 ‘여성의 사랑'이 성적인 사랑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현재까지도 남아있지만, 그녀가 어떤 방식이든 여성을 사랑했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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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는 부도덕하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사랑의 한 종류였다. 여성과 남성 모두 이성과 결혼을 하고도 종종 동성과의 관계를 유지하곤 했다. 자료의 부족으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사포도 남성과 결혼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빅토리아 시대에 사포의 작품과 그녀의 삶이 다시 조명 받았다. 그러나 당시 사포에 관한 자료는 한정적이었고 심지어 이성애 가부장적 질서에 의해 검열당했지만, 대중의 상상력이 그 빈틈을 메웠다. 빅토리아 시대 동안 사포의 이름에서 파생된 ‘사파 이스트(Sapphist)’라는 말은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을 묘사하는 데 사용됐다. 또한, 사포가 살았던 레스보스 섬에서 여성 간의 동성애가 성행했다는 의미에서 ‘레즈비언(Lesbian)’이 여성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결국, 사포의 이름을 딴 ‘사파 이스트’, 레스보스 섬의 이름을 딴 ‘레즈비언’ 모두 같은 뿌리를 가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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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Gay는 일반적으로 남성 동성애자를 지칭하지만, 좀 더 넓은 의미로 성별과 관련 없이 동성애자를 통틀어 지칭하기도 한다. 때문에 여성 동성애자도 Lesbian대신 Gay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레즈비언? 👨‍⚖️유죄를 선고합니다!

사포가 여성으로서 여성에 대한 사랑을 자유로이 노래했던 고대 그리스와 달리, 로마 제국에 기독교가 허용된 이후 세상은 동성애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자연의 섭리에 반한다"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관용과 포용의 미덕 대신 억압과 폭력으로 동성 간의 사랑을 죄악으로 간주했다.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죄목은 여성 간의 동성애!

1636년 매사추세츠 주의 ‘존 코튼(John Cotton)’은 두 여성 간의 성관계를 금지하고 최대 사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제안했다. 존은 여성 간의 성관계뿐만 아니라 남성 간의 성관계, 동물과의 성관계 등 ‘자연스럽지 않은 것들'을 사형시키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법이 통과되어 제정되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다행히도 당시의 레즈비언과 게이는 사형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형을 면했다고 법적으로 자유로웠다는 것은 아니다. 1649년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서 두 여성 ‘사라 화이트 노먼(Sarah White Norman)’과 ‘메리 빈센트 해먼(Mary Vincent Hammon)’이 “침대 위에서 서로 장난을 쳤다”는 이유로 기소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기록된 레즈비언 유죄 판결 사건으로, 메리 해먼은 당시 만 16세 미만이었기 때문에 기소되지 않고 훈계를 받고 끝났지만, 사라 노먼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처벌의 일환으로 그녀는 해먼과의 “부정한 행동"을 공개적으로 인정해야 했고 향후 “그런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사랑하는 사람, 성적으로 끌리는 사람과 성적 교감을 나누는 행위가 단지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정한 것"으로 치부됐고, 여성은 죄인이 됐다.

빌리티스의 딸들👭
- 미국 첫 레즈비언 단체의 등장

동성애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이고 개방적이었던 고대 그리스를 지나, 종교적인 이유로 동성애를 대대적으로 박해하던 중세 시대가 도래하며 레즈비언은 점점 더 안으로, 벽장 속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잔인한 박해와 억압은 현대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아무리 억압해도 사랑하는 마음은 죄가 아니고, 강제하면 할수록 돌파구를 찾는 것이 사람이다.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을 표출하고 사회적 편견에 맞서기 위해 8명의 레즈비언이 모였다.

  • 함께 빌리티스의 노래를 부르자

195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필리스 라이언(Phyllis Lyon)’‘델 마틴(Del Martin)’을 포함한 8명의 레즈비언이 레즈비언 사교 모임을 열었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에서 사포와 함께 살았던 가상의 레즈비언을 묘사한 작품인 ‘피에르 루이(Pierre Louys)’의 시집 ‘Songs of Bilitis’에서 영감을 얻어 이 모임에 ‘빌리티스의 딸들(Daughters of Bilitis)’이란 이름을 붙였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만연했고 그들을 보는 차별적 시선은 칼날만큼이나 날카로웠다. 이때 등장한 빌리티스의 딸들은 레즈비언 여성들이 사회적 편견과 위협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며 큰 인기를 얻었다. 출범 3년 만에 뉴욕 지부를 설립하고 영향력을 확대한 이들은 단순 사교 클럽에서 점차 레즈비언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운동 단체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미국의 첫 레즈비언 단체로서, 가장 주목받은 업적은 레즈비언을 위한 잡지 ‘The Ladder’를 전국적으로 출간・배포한 일이다. 1956년부터 1972년까지 16년 동안 이 잡지는 레즈비언 공동체의 교류를 활발하게 해주었고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이들은 또한 직접적인 레즈비언 인권 운동과 투쟁에도 앞장섰다. 뉴욕 지부 설립자 ‘바버라 기팅스(Barbara Gittings)’는 60년대에 백악관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에 참여했고, 차별당하는 동성애자들을 카운셀링하며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어둠의 시대에 작은 빛을 비추던 레즈비언의 피난처는 장장 20년간 존속했다. 진보운동의 급물살이 밀려올 때까지 개척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으며, 성숙한 자세로 다음 세대를 맞이했다. 1978년 잡지의 마지막 권을 출판한 빌리티스의 딸들은 뒤이어 오는 이들의 힘찬 발걸음에 박수를 보내며 공식적인 해산을 선언한다.

👰
빌리티스의 딸들이 해산된 후에도 필리스 라이언과 델 마틴은 여성 인권 운동과 동성애자 권리 증진 운동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2008년 5월부터 동성 결혼이 허용된 캘리포니아주에서 결혼식을 올린 ‘동성 커플 1호’로 기록됐다.

Proud to be Lesbian🏃‍♀️

빌리티스의 딸들 이후에도 전 세계에서 수십 년 동안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다양한 운동이 이어졌다. 레즈비언 여성들은 동성애에 대한 편견의 벽을 무너뜨리고 그 이름 위에 덮어씌워 진 오명을 벗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고, 불평등하게 빼앗겨버린 권리를 되찾기 위해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할 때면 새로운 고비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빠르지 않아도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열매를 맺었다.

세계의 여러 나라가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으며, 아직 옷장에 있는 레즈비언 여성들이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많은 여성이 투쟁하고 있다. 사회는 그들의 부름에 조금씩 천천히 변하고 있다.

  • #레즈비언_가시화의_날🏳️‍🌈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2008년부터 매년 4월 26일레즈비언 가시화의 날(Lesbian Visibility Day)로 레즈비언 여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동안 레즈비언 여성이 그들의 권리와 평등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룩했는지 기념하는 날이다.

이날에는 성 소수자로서 겪는 차별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 겪는 성차별도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레즈비언 여성, 정치∙미디어∙대중 문화 분야에서 활약하는 레즈비언 여성을 조명한다.

  • 카메라 앞에 선 그녀들이 말하고 싶은 것📸

매년 많은 셀럽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당당히 밝히며 세상에 메시지를 보낸다. ‘다름`에 벽을 쌓고 외면하는 세상에게, 그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함께 연대하는 레즈비언에게, 세상에 자신을 드러낼 준비가 조금 더 필요한 레즈비언에게,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한 여성들에게.

🖋️
“저는 여성 때문에 레즈비언이 됐어요. 왜냐면 여성은 아름답고, 강인하고, 자비롭기 때문이죠.”
- 리타 메이 브라운 (미국의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
😉
“우리가 널 어떻게 불러야 해? 게이? 아니면 레즈비언?”
“그냥 엘렌이라 불러줘”
- 토크쇼 <엘렌쇼> 중
🎥
“정말 제대로 하고 싶었다. 난 단지 한 명일뿐이다. 그래서 사회 전체의 이야기를 모두 할 수 없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했다. 동성애 영화를 만들려는 다음 사람이 지금보다 99% 더 쉽게 영화를 만들 수 있었으면 한다. 가능한 많은 장애물을 제거하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다양한 사람들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 서맨사 리(필리핀의 영화감독 겸 작가)

Dip 극락 번들Aer 극락 번들

요약

  • 여성을 사랑한 여성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항상 존재해왔다.
🌈

참고문헌
댓글
나는 여성에게 설레 본 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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