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팬데믹이 세계를 덮쳤던 시기, 어느 봄날. 제인 구달은 영국 남부 해얀 본머스의 집에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2차 세계대전 시기에 태어난 그는 90년 가까운 인생의 길에서 놀라운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살아있는 인류의 역사책과도 같은 셈이죠.
하지만 충분하지 않았나 봅니다. 이제는 백발이 되어 전 지구적 전염병 사태까지 겪고 있어요. 1년 중 300일을 여행하며 살아오던 삶에 잠시 제동이 걸렸고,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며 생존하는 법을 배워가야 해요. 재미있는 건, 여전히 그의 눈빛이 열정으로 빛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결코 지치지 않습니다. 어떻게?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슈퍼긍정주의자, 제인 구달의 ‘팬데믹 일요일’을 따라가 봅시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88세에도 이어집니다. 지난 몇년 동안은 매일 눈을 뜨는 곳이 다른 나라였어요. 네덜란드에서 3일을 보내고, 그다음에는 벨기에에서 3일, 또 프랑스에서 며칠 있다가 중국으로 날아가는 게 평범한 일상이었죠. 때가 되면 탄자니아 곰베에 있는 침팬지들의 집으로 가곤 했습니다. 이곳은 제가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보낸 집이지만 20대 이후에는 잠시 거쳐 가는 공간에 불과했죠.
코로나의 유행으로 국경이 폐쇄된 뒤, 저는 이 오래된 집에 돌아왔습니다.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저 자신만 보자면 크게 변한 것은 없어요. 7시면 일어나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고 청바지에 파타고니아 재킷을 걸친 뒤 응접실 소파에 앉아 간단한 식사로 아침을 열어요. 토스트와 커피 한잔이면 충분합니다.
예쁜 집이죠? 이 집은 1872년에 지어졌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작은 해변마을에 세우고 정원을 정성껏 가꿨죠. 우리 가족은 2차 세계대전을 피해 1930년대 이곳에 처음 왔어요. 언제나 동물들과 함께였던 어린 시절이 기억나요. 개, 고양이, 거북이 두 마리, 햄스터들 때문에 매일이 시끄러웠죠. 이번에는 코로나를 피해서 다시 피난을 오게 되었네요. 저와 여동생, 여동생의 아이들이 함께 머물고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곳은 다락방과 정원입니다. 다락방에는 저의 추억들이 가득 쌓여있죠. 타잔에 관한 책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어렸을 때 꿈은 타잔과 결혼하는 거였는데…더 많은 걸 이루게 되었네요? 역시 전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아침식사를 끝내고 오전 강연을 성공적으로 진행했어요. 탄자니아의 학생들과 만났답니다. 국경 폐쇄 초기, 발이 묶였다는 걸 알았을 때는 조금 당황했죠. 하지만 돌어 보니 좋은 점이 있어요. 저는 이 집에서 매일 많게는 5번 이상의 온라인 강연을 진행해요. 오히려 예전보다 더 많은 학생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죠. 오늘도 세 번이 넘는 강연이 예정되어 있답니다.
제게 일요일은 별 의미가 없어요. 그저 열심히 살아가야 할 또 다른 날일 뿐이죠. 유일한 루틴은 점심 식사와 산책이에요. 자연 속에서 홀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항상 소중합니다.
🧘♀️ 제인 구달의 ’힘이 솟는’ 명상법
“저는 놀라운 순간을 많이 겪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방법을 훈련했어요. 그렇지만 마음의 평화를 주는 공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자연입니다. 숲속에서 혼자 있을 때 저는 힘을 얻어요. 자연 속에 위대하고 신비로운 영적인 힘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 힘을 느끼고, 제 것으로 만들 수 있어요.”
정오에는 어렸을 때처럼, 정원의 너도밤나무 아래에서 식사를 합니다. 토스트, 치즈, 토마토 조금. 아침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조용히 식사를 하다보면 검은 새와 붉은가슴 찌르레기가 찾아와 노래를 불러줍니다. 시간이 된다면 개와 산책을 해요. 여동생이 키우는 ‘빈’이라는 이름의 노견이 있는데 아직 친해지는 중이에요.
오후에는 또 다른 나라의 학생들을 만나요. 저는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나갈 젊은 친구과 만나는 게 즐거워요.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아직 많거든요. 이렇게 강연을 한지도 벌써 몇 십년이 되다보니,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이미 들었던 내용이라면 미안해” 사과하기도 하죠. 하지만 좋은 이야기는 두 번을 들어도 여전히 좋아요. 학생들이 저에게 묻는 질문들도 늘 비슷하죠.
1957년, 스물 셋의 저는 처음 아프리카에 갔어요. 케냐에서 생태학자들과 함께 일하며, 영장류를 관찰하는 데 푹 빠졌어요. 그리고 탄자니아에서 침팬지를 연구하게 되었죠. 15개월 동안 그들과 교감하며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했어요.
침팬지도 우리처럼 도구를 사용하고 고기를 먹고, 자신들만의 사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거였죠. 그 전까지 과학자들은 영장류 중의 인간만이 지닌, 아주 특별한 특성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제 발견은 학계에서 무시당했습니다. 대학도 나오지 않은 여자의 미친 소리라고들 했죠.
그러던 어느 날,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팀이 탄자니아를 찾아왔어요. 처음엔 제가 정글에서 머리 감는 모습을 찍더군요. 그들이 왜 왔는지 짐작할 수 있겠죠?
하지만 침팬지들이 결국 진실을 알려줬어요. 카메라 앞에 선 내게 아기 침팬지 플린트가 다가왔고 이 유명한 사진이 찍힌 거예요. 멋진 사진에 사진작가들은 흥분했어요. 그리고 진지하게 침팬지의 세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풍부한 생활 방식 (특히 도구를 사용하는!)을 기록했어요.
이 사진과 영상들이 유명해지면서 사람들은 인간이 특별하고 외로운 영장류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침팬지들도 인간들처럼 뚜렷한 특성과 성격이 있어요. 그들이 마음을 열고 허락한다면 친구가 될 수 있죠. 이 발견이 늦어진 건, 단지 우리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슬프게도, 요새 학생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에요. "우리 세상에 희망이 있다고 정말로 믿으세요?” 나 역시도 지구 곳곳에 홍수와 화재가 일어나고 빙하가 걷잡을 수 없이 녹아내리는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사실 희망은 버릴 수 있는 낭만적인 사고 방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생존 특성입니다. 비관에 빠지는 대신 제 조언을 들어보세요.
- “지금 우리의 행동이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나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 좀비가 되겠죠.”
- “세상을 바꾸겠다고 결심하지 마세요. 반드시 실패할 테니까요. 비장한 각오는 내려두고 매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세요. 그렇다면 우리에겐 여전히 기회가 있습니다. 저는 젊은이들이 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 "당신은 주변 세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은 변화를 만듭니다. 어떤 종류의 변화를 만들지는 당신이 결정해야 합니다."
저는 늘 다음 모험을 기쁘게 준비합니다. 코로나의 유행이 잦아들면 해야 할 일들, 가야 할 곳들이 정말 많아요. 한국에서도 만날 사람들과 친구들이 있죠. 제가 운영하는 환경단체 ‘뿌리와 새싹’ 회원들, 최재천 선생님도 보고싶어요.
다음 해 봄에는 다시 네브라스카로 캐나다 두루미 (Sandhill Crane)의 이동을 보러 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국경이 막히기 전에는 매년 사진작가들과 함께 그곳을 찾았었죠. 지구 상에 존재하는 캐나다 두루미의 80%가 한 곳에 모여 웅장한 행진을 한답니다. 여러분도 기회가 된다면 탐조 여행을 한 번쯤은 꼭 떠나보세요. 장엄한 자연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신비한 힘이 있거든요.
🥃 제인 구달의 저녁 위스키 한 잔
어느새 새벽이네요. 잠들 기 전, 매일 밤 위스키를 마셔요. 일종의 의식이죠. 엄마와 저는 집에서 작은 잔을 함께 마시곤 했어요. 제가 집에 없을 때에도, 각자 다른 곳에서 저녁 7시에 잔을 들어 올렸어요. 연결감을 느끼는 우리만의 방법이었죠 . 지금 엄마는 매일 저녁 구름 속에서 건배할 거예요. 우리의 최애 위스키는 조니워커 블랙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