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여성 성∙연애 고민 필수앱 자기만의방2천 개의 평가
4.8
비밀 정보 열어보기
logo
share button
제모

제모

털이 모가 문제인가요?

7min
제모

목적

포유류에 속하는 생물인 우리에게 털이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종의 특성과 별개로 우리는 자라면서 ‘특정’ 부위의 털을 제거하고 매끄럽게 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감을 체득하게 된다.

생물학과 사회학 사이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던져볼 만하다.

털을 없애고 싶다는 욕망도 털이 난다는 종의 특성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인지. 우리는 언제부터 털을 가꾸기 시작했는지. 우리에게 털이 나도 괜찮은 곳이 어딘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모두가 그 기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이 문서를 읽는 7분 동안 생각해보자. 당신이 지닌 500만 개의 모낭과 그것들이 점유한 피부와, 거기에 둘러싸인 존재, 즉 당신 자신에 대해서.

숙명인가 선택인가

✔️ 고대의 유행

기원전 3,000년, 고대 이집트에서 왕과 귀족들은 긴 머리카락과 수염을 뽐냈다. 그리고 왕조가 부흥하며 새로운 유행이 시작됐다. 특별한 날을 위한 ‘장식용 털’ 외에 모든 털이 제거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면도와 매끈한 피부를 ‘문명인’의 덕목으로 여겼다.

⚱️
옛날 옛적, 이집트에서는... 여성도, 남성도, 고귀한 자도, 하인도, 젊은이도 늙은이도. 모두가 몸에 존재하는 털 전부를 깔끔하게 밀었다. 부유한 사람들은 집에 이발사를 두었고, 서민들도 매일 길거리의 이발사를 찾아갔다. 왕은 종교의식을 할 때에만 가발을 쓰고 가짜 수염을 달았다. 왕족이 죽으면 전용 이발사는 보석으로 장식된 면도기와 함께 순장되었다. 그래서 수천 년을 자고 깨어난 이모텝이 그렇게 ‘말끔한’ 모습으로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이 털을 없애는 데 집착했던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고대의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 인류는 긴 시간 털과 평화롭게 공존했다. 중세시대부터 18세기 후반까지 서방세계에서 여성들은 체모에 대해 큰 관심을 쏟지 않았다. 앞머리를 뽑아 이마를 더 넓게 보이게 하는 등의 유행은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몸에 나는 털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거나, 제모를 숙녀의 기본 자질이라고 생각하는 문화는 없었다.

한국과 동양 문화권에서 여성의 털은 훨씬 좋은 대접을 받았다. 우리 선조들은 여성의 체모, 특히 음모를 ‘생식력의 상징’으로 보아 귀하게 여겼다.

✔️ 용의자 공개

우리는 인간이 털을 ‘태초부터’, 또는 ‘일관성 있게’ 싫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성별에 관계 없이 털을 혐오했던 고대 문명과는 달리, 현대 문명에서 여자의 털에 더욱 엄격하게 다뤄진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의 제모 문화가 ‘새로운’ 것임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누가, 언제부터 여성의 털에 오명을 씌웠을까?

  • 첫 번째 용의자 : ‘진화론을 오용한 바보들’

미국 베이츠 컬리지 섹슈얼리티 연구소 소속 레베카 헤르지히 교수는 ‘여성의 털은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시기를 1800년대 후반으로 지목한다. 인간이 원숭이의 조상이 같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우리 세상에 큰 충격을 준 때다.

찰스 다윈은 ‘자연 선택’ 이론을 통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는 공동의 조상이 있으며, 현존하는 모든 ‘종’은 환경에 따라 적응하는 과정에서 진화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다윈의 아이디어가 대중화됨에 따라 많은 이들은 각 인류 개체 가운데서도 진화가 ‘덜 진행된’, 그래서 ‘더 원시인에 가까운’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품게 되었다.

🙉
우리 안의 원숭이 찾기 ‘우리 중 누군가는 더 원시적이다.’ ‘우리 중 누군가는 진화가 덜 되었다.’ 사람들은 다윈의 이론을 이용해 자신보다 열등한 인간을 찾으려 했다. 혐오를 정당화하고 우월감을 얻기 위해서.

이때부터 털이 많은 사람들이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학자와 의사들은 인간의 체모를 ‘질병, 광기, 범죄 성향’과 연결시켰다. 또한 이를 ‘성적 매력의 척도’로 제안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점은 남성의 털과 여성의 털이 전혀 다른 취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털은 수치스럽다’는 개념은 여성에게 더 많은 통제를 가했다. 털을 관리하지 않는 여자는 남자보다 더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제 여성의 털은 수치심의 근원이 되고 제모는 마땅한 '의무'로 자리잡아간다.

  • 두 번째 용의자 : ‘면도기 회사’

20세기에 이르러 노출이 있는 여성복이 유행하기 시작하자 여성의 제모는 더욱 대중화됐다. 1915년 질레트가 처음으로 여성용 면도기를 만들고, ‘당황스러운 개인적 문제를 해결해 줄' 최신 유행 상품이라고 소개했다. 1922년에는 여성 패션 잡지 '하퍼스 바자'가 이들의 공범자가 됐다. 여성지 최초의 면도기 광고를 게재한 이들은 '여성이라면 겨드랑이털 제거는 필수!'라는 표현을 썼다.

이 때부터 제모는 여성이 ‘해결해야 할’, ‘필수적 문제’가 되었다. 목욕을 할 때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는 것 외에 다리털도 밀어야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1964년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15 ~ 44 세 미국 여성의 98 %가 정기적으로 다리를 면도하고 있었다.

  • 세 번째 용의자 : ‘포르노’

여성의 털에 대한 사회의 잣대는 점점 더 엄격해진다. 1960년대, 페미니즘의 두 번째 물결과 함께 히피문화가 확산되면서 여성들이 ‘털 없는 몸’을 거부했던 때도 있었지만 세상의 표준을 재정립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곧 이어 다른 유행이 더 세게 휘몰아쳤다.

포르노 산업과 함께 선정적인 대중 문화가 부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섹스를 관음할 수 있게 되었다. 포르노스타들은 관객들의 눈을 끌기 위해 반짝반짝 빛나는 음순을 자랑했고, 그 댓가로 인기와 부를 얻었다. 곧 많은 유명인들이 포르노스타를 따라 했고, 주류 미디어가 트렌드를 소개하면서 여성의 필수 제모 목록에 ‘외음부’를 추가한다. 그 다음은? ‘대중’, 즉 보통 사람들이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더 엄격한 규범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환상 2011년, 연구에서 음모를 완전히 제거한 미국 여성은 60%로 나타났다. 2017년 연구에서 음모를 ‘자연스럽게’ 기른 여성은 6%에 불과했다. 스마트폰과 무선 인터넷의 발달이 음모 제거 유행을 더욱 부추겼다고 해석하는 연구도 있다. 사춘기 시절 스마트폰으로 털 없는 여성들이 등장하는 포르노를 보며 성장한 이들이 현실 섹스에서 여성의 털을 부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유일한 선택?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털을 다루는 유일한 방법이 '제모'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제모의 대상이 되는 범위는 빠르게 넓어져갔고 여성에 부과되는 의무는 자꾸만 커졌다.

오랜 시간 여성의 음모를 찬양해왔던 한국에서도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음모를 완전히 제거하는 ‘브라질리언 왁싱’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양상과 비교할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털을 제거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많은 매체들과 유명인들은 음모를 자연스럽게 두는 일이 ‘섹시하지 않고’, ‘불결하며’, ‘유행에 뒤떨어지는 것’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청결을 위해 음모를 제거해야 한다? 많은 광고들이 ‘더 깨끗해지라’고 하며 제모를 권유한다. 마치 음모가 반드시 제거해야 할 불결한 대상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음모는 결코 더럽지 않다. 연약한 외음부 피부를 보호하는 이 털들은 유해한 미생물을 가두는 기능을 한다. 그 과정에서 피지나 땀, 노폐물 등이 쌓일 수 있지만 이 문제들은 ‘씻어서’ 해결 가능하다. 머리카락이 있으면 땀이 차기 쉬우니 삭발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같은 이유로 음모를 제거하라는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을까.

  • 제모는 정말 ‘선택’의 문제일까

여성들은 다양한 이유로 털을 제거한다. 하지만 제모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회문화적 규범’이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의 브리앤 파스 교수는 여학생들에게 ‘제모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보는’ 과제를 주고 그들의 경험을 토대로 논문을 작성했다. 그는 참여한 학생들 대부분이 과제를 하면서 깊은 수치심과, 투쟁심, 배척감과 같은 문제를 공유했다고 이야기한다.

🙁
“여성들은 사회, 가족이나 친구들이 그들 자신에 몸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 즉 '나는 제모를 선택합니다'라고 생각하는 것 중 대부분은 실제로는 선택이 아니라 수 세대에 걸쳐 전달되고 강제된 것들이었습니다.” - 브리엔 파스, 애리조나 주립대 교수

  • 저울 비교

제모를 통해 얻는 이점도 분명히 있다. 질염이나 피부염 등 특정한 질병을 관리하기에 더욱 용이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또한 현재의 사회 문화 속에서 여성들은 털이 없을 때 자존감을 얻고, 정서적으로 편안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감수해야 할’ 위험은 쉽게 간과된다.

제모의 단점은 더욱 분명하며 치명적이다.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2013년 영국에서 3,00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이 평생 제모에 쏟는 시간은 4개월에, 지불하는 비용은 8,000파운드(한화 약 1,25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건강을 해치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음모를 제거하는 여성 중 60%는 부작용을 경험하는데, 찰과상부터 자상, 화상, 세균 감염까지 다양한 위험에 노출된다.

이 장점과 단점을 저울에 올려두고 합리적 판단이 무엇인지 헤아려보자. 비정상적인 무게추 하나가 계산을 망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여성의 털을 혐오하는 사회 문화’가 너무나 무겁다.

🌱
털에는 이유가 있다 음모를 제거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클라미디아, 수포진, HIV, HPV, 매독과 같은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 제모의 미래 : 희망편

젊고 힘 있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2020년, 잡지 '하퍼스 바자'에 겨드랑이 털을 드러낸 배우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의 화보가 실렸다. 약 100년 전 여성 면도기 광고를 처음으로 게재했던 여성지는 과거 자신들이 범했던 오류('여성이라면 겨드랑이털 제거는 필수!')를 수정했다. 가수 할시도 겨드랑이털을 과시하며 '롤링스톤지' 표지를 장식했다. 엠버 로즈가 음모를 인스타그램에 공개했고, 많은 여성들이 그를 뒤따랐다. 이제 여성의 털은 수치심의 근원이 아닌, 자신감의 상징이 되려 한다.

산업계도 이런 흐름을 빠르게 받아치고 있다. 2017년 설립된 스타트업 회사 'Billie'는 면도기를 팔면서 '제모는 개인적인 선택' 이라고 설명한다. 비키니 수영복 사이로 수북한 음모를 드러내는 모델의 사진을 쓰며 '면도하지 않는 것'도 멋진 선택이라고 긍정한다. 털을 없애는 대신 기르면서 관리하는 제품도 등장했다. 엠마 왓슨이 사용해서 유명해진 '퍼(Fur) 오일'은 겨드랑이털부터 음모까지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상품이다.

지난 2세기 동안 여성의 털에 대해 규정한 주체는 여성이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떨까. 미래 세대에게 우리가 물려 줄 것이 나쁜 공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약

  • 털을 수치스러워하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 여성의 제모는 '개인적인 선택'이어야 한다

전문가의 조언
제모를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마세요! 역사 전반에 걸쳐 너무 많은 남성들이 여성의 몸을 검열해왔는데, 우리끼리 또 하자니 신물이 나요
(알렉스 엠케이, 저널리스트)
참고문헌
댓글
다리털이 부끄럽다고 느낀 적이

연관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