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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자기2024.05.04

K장녀라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 나만 이렇게 산 게 아니구나, 이게 한국 사회에서 꽤나 보편적인 상황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공감과 측은지심이 함께 들었었다. 나는 지방 사람이고 부모님의 학력은 두분 다 높지 않았으며 교육열이 낮았고 금전적인 여유도 없었던지라 고등학교때까지 학습 부분에서 별다른 지원을 받지 않았다. 다행히도 중학교때는 비슷한 상황의, 과외나 학원을 다니지 않는 친구들과 놀았고 고등학교때는 야자 때문에 티가 나지 않았다.

그때 늘 아빠가 하던 말은 그냥 고등학교 졸업하면 집 앞에 공장이나 가서 백만원이라도 벌라는 말이었다. 가시나는 그렇게 돈 벌어서 결혼 하면 남의 집 사람이라나ㅎㅎ 그래도 나는 공부를 곧잘 해서 가까운 광역시의 국립대에 진학했다. 남동생은 아들이라고 오냐오냐하는 집안에서 역시 공부 지원이 없었고, 공고로 진학했다. 아들이라고 돈을 더 주는 건 아니어서 일관성 있게 다행이었다고 해야할까ㅋㅋㅋㅋ 아니 뭐 줄 돈이 없어서 안 준거긴 할텐데.....ㅋㅋㅋㅋㅋㅋㅋ


뭐 이건 한 10년전 얘기고.. 2년 전에 아빠가 암에 걸렸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몰랐다. 변명하자면 나와 동생은 일때문에 타지에 내내 있었고 집에 가는 것은 일년에 한두번 정도였으며 암을 걸리고도 아빠는 가족에게 말을 안 했다. 엄마는 아빠가 응급실에 복수가 차서 실려간 것까진 알았는데 진단명은 몰랐다. 암인걸 나와 동생이 알게된 건 아빠가 또 쓰러져서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을 때였다.

그 이후 아빠는 한 1년여간 항암을 하다가 어느 날 항암을 포기해버렸다. 엄마가 아빠가 다음주부터 옆 광역시에 있는 병원을 안 가겠다고 한다고 엉엉 울면서 전화가 왔을때 동생과 내가 가서 집 근처 병원에서 항암만 받자고 해도 병원을 다녀도 나아지는 게 없다며 의사는 다 사기꾼이라며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아빠 형제들이 돈 때문에 그러는거면 자기들이 책임질테니 자기들이 아는 병원을 가자고 해서 겨우 갔는데 그게 암요양병원도 아니고 치매나 거동불가 노인들을 모시는 요양병원이었다. 당연히 아빠는 눈만 뜨고 유동식만 겨우 삽관하는 노인들 사이에서 알맞은 케어를 받지 못하고 일주일만에 상태가 아주 나빠졌다. 케모포트가 있는데도 병원에서는 그것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팔과 발목에 링겔 주사를 꽂아놓았다. 면회가 주1회로 제한되어 있어서 그걸 너무 늦게 알았는데 심지어 나 외에는 아무도 아빠의 그렇게 급격하게 나빠진 상태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면회 후에 나는 여기서 아빠를 죽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죽더라도 여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또한 나뿐이었다. 사람이 황달이 심하다못해 까매져있는데, 다들 아직 아빠는 젊으니까 괜찮을 것처럼 굴고 사실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근처 호스피스병원을 검색해서 다 전화해서 빈자리가 있는지 묻고, 지금 병원에 진단서를 써달라고 하고, 대리진료를 받고, 전원날짜를 잡고, 응급차를 수배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당연히? 병원비는 내 몫이었다. 어차피 고모와 삼촌들이 진짜 병원비를 부담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한 말이었던거지.

호스피스 가기 전날만 해도 의식이 있었고 요양병원 간호사분에게 부탁하면 전화에서 어눌하지만 대답은 할 수 있는 상태였는데 전원하는 날부터 급격히 간성혼수 상태로 들어갔고 섬망증상이 나타났다. 도착한 호스피스에서는 아빠를 보고 이런 상태인 줄 알았다면 환자를 받지 않았을거라고 했다. 다행히도 이미 온 사람을 쫓아내진 않았는데, 전에 연명치료의사를 써둔게 없었기에 아빠의 손을 잡고 내가 서류를 썼다.

그리고 이틀뒤에 아빠는 돌아가셨다. 임종은 나만 지켰다. 임종 전날 임종실로 옮겨졌고 지인과 가족들에게 면회와 상주가 가능해졌는데 엄마와 동생은 감기 기운이 있다며 집에 가서 자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의사선생님이 회진하면서 이 가족 중에서 아빠에게 애착이 있는건 딸뿐이라고 했다. 사실 그렇게 상호애착이 있었던 적이 없는데 이 집 사람 중에서 나만 책임감을 발휘하고 있었던거다...

장례식장도 관을 뭘 할지도 꽃을 어떻게 하고 음식은 뭘 하는지도 모두 내가 정했다. 나만 있었으니까. 장례식장에 내가 상주라고 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이 절차에 대해서 알아보지 않았을 것이니까. 뭐 내가 그걸 다 정하고 상복으로 갈아입고 영정사진을 기다리며 장례식장에서 대짜로 누워있을때쯤 가족들도 오긴 왔다.


뭐 물론 상주 완장은 아들인 남동생이 찼다. 그리고 친척들은 다 남동생이 고생이 많다고 칭찬함.. 이것이 K장녀의 제일 웃긴 모먼트 아닐까.. 일은 내가 다 하고 재주는 내가 다 부렸는데 공은 뜬금없이 아들이 받는 거 말이다.... 심지어 직장 다니는거 나뿐이라 조문객도 다 내 손님이었는데....



그리고 아직도 생각한다. 내가 아빠를 죽인 것 같다는 생각을... 아니 나도 이성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걸 아는데. 본인이 암걸렸다고 말 안했고 항암을 포기한 것도 본인인데. 그런데 뭔가 내가 했어야 한다는 뒤늦은 책임감과 죄책감이 뒤섞인 감정이다. 이것도 아마 K장녀 모먼트겠지..


이렇게 눈물 흘리며 쓰려는 건 아니었는데 제일 최근 느낀 k장녀 모먼트를 생각하니 좀 슬픈 사연이 됐군... 아무래도 장녀는 부모가 만드는 거니까....

여튼 자기들도 본인 돈 벌게 되면 부모님 건강검진도 한번 큰돈 들여 시켜드리고(특히 대장내시경!) 혹시 이상한 가짜뉴스나 건강정보 보고 있지 않은지 잘 단속하도록 해야 한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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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ser thumbnale
    숨어있는 자기 1

    너무 고생 많았다 자기…

    2024.05.04좋아요1
  • user thumbnale
    숨어있는 자기 2

    에고 나도 부모님 빚 대신 갚고 있는 사람으로서 남일같지 않네ㅠ 넘 고생많아써

    2024.05.04좋아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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