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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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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향 에메랄드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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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없는 밤

너는 카톡을 읽고 답하지 않았다.

나는 네가 뭘 하는지 말해줬으면 했다. 거창한 걸 바란 건 아니었다. 설거지를 한다든지, 방을 치운다든지, 씻고 있다든지. 지금은 이것 좀 하고 있으니 조금 있다가 연락하겠다는 말. 그 정도면 됐다.

나는 너와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너는 집안일을 하고 정리를 하느라 바빴고, 나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네가 왜 대답하지 않는지를 생각했다.

사실은 여기까지였다.

한 사람이 집안일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그 짧은 공백을 견디지 못했다.

나랑 이야기하기 싫은가.
나를 귀찮아하나.
나보다 다른 일이 중요한가.

그러다 문득 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붙잡고 있는 건 아닐까.

거기까지 가니 불현듯 내가 초라해졌다. 이러면 나라도 질릴 것 같았다. 상대방이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랑의 크기를 재고, 관계의 끝을 상상하고, 급기야 나라는 사람의 매력까지 의심하는 내가 지겨웠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생각하면 할수록 짜증이 났다.

그냥 나를 덜 좋아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간단해지는 것 같았다. 사람의 마음에는 크기가 있고, 나는 더 좋아하고 너는 덜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기다리고 너는 네 할 일을 한다. 나는 대화를 원하고 너는 정리를 한다.

그런데 너는 말했다.

정리하고 연락하려고 했다고.

그리고 조금 뒤에는 바로 연락해보겠다고 했다. 피곤하니까 얼른 자라고도 했다.

맥이 빠졌다.

내가 혼자 건너간 수많은 문장들은 너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문장들이었다.

너는 집안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공백 속에 혼자 허우적 대고 있었다.
너는 정리를 하고 있었고
나는 우리의 관계를 재고 있었다.
너는 조금 있다 연락할 생각이었고
나는 혼자 이별을 한 번 더 하고 있었다.

어쩐지 우습기만하다.

왜 나는 누군가의 침묵 속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걸까.

네가 무엇을 하는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전히 나를 좋아하는지 알아내느라 정작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잊어버렸다.

네가 없는 것이 무서웠던 게 아니라,

그 순간에는 내가 없었다.

내 기분도, 내 밤도, 내가 해야 할 일도 전부 네 답장 하나 뒤에 줄을 서 있었다. 답장이 오면 안심하고, 오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사람처럼.

그래서 오늘 밤 내가 서운했던 이유를 더 이상 사랑의 크기로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냥 너와 이야기하고 싶었다.
기다리다가 서운해져버려
생각이 너무 많아졌다.

사랑받고 있는지 확인하느라
나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배워야 하는 건 누군가를 덜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계속 나로 남아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너는 노력해보겠다고 하곤
피곤할테니 내게 얼른 자라고 한다.

오늘은 이만 자기로 마음먹는다.

사랑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내일 생각해도 된다.

오늘 밤에는 일단 나부터 데리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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