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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자기202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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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아프고 행복하게 했던 첫연애를 마무리했어
서로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면서 등돌린 게 아니고
정말로 상대방이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 다독이면서 보내줬는데
내 이야기를 잠시만 들어줄래...
그 친구가 난 너무 안쓰러운 입장이거든

그 친구는 유년 시절이 좀 편안하지 않았어
다른 가족들이랑 왕래가 잦지 않았고,
어머니께서 산후우울증이 심하게 오셨던 상황이라
초등학생 때 일방적으로 그 애가 폭력을 받아내는 입장이었나봐
매일같이 종아리랑 엉덩이 매질을 당했다고 하더라고
집에서 뛰어다닌다고 맞고 밥 잘 안 먹는다고 맞고 어쩐다고 맞고... 뭐 이유도 없었대
그냥 중학교 갈 때까지 거의 매일 그랬다고 하더라고 덤덤하게...

이후에도 부모님께서 여러 방향으로 통제를 하셨고
(대학생 되어서야 스마트폰을 썼었대 학교 마치고 무조건 집으로 와야되고... 이런 식으로?)
마음에 아무런 여유가 없으니까 학교 가서도 사람들이랑 싸우고
교우관계도 어떻게 맺는지 모르다가

중학생 때 상담치료를 오래 받고
고등학생 때는 좀 잘 지낸 것 같더라
좋은 친구들을 만났었어

어찌저찌 어렵게 대학을 왔는데
거기에서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혀보니까
그제서야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것에 가슴이 뛰는 사람인지
무얼 위해 살고자 하는지' 고민을 전혀 해보지 않은...
그냥 빈 통 같은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이 절절하게 들었다고 하더라고.

그러다가 책 읽는 연합동아리에서 나를 만났는데
일단 내가 마음에 들었고, (ㅋㅋㅋㅋㅋ)
좋아하는 것에 대해 차분하게, 또 열정적으로 말할 줄 아는 나를 보면서
'아, 이런 좋은 친구한테서 영향받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가지지 못한 따듯하고 풍족한 마음을 배워갈 친구일지도 모르겠다
이 애 옆에 있고 싶다' 란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고... 고맙게도.
그래서 차근차근 나에게 다가온 거였고
나도 차분하고 말씨가 예쁜 이 친구가 좋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미필인 걸 알았지만...ㅋㅋㅋㅋㅋ
감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만남을 시작했어

그런데 상당히 많이 다투고 화해하는 걸 반복했거든?
이 친구와 교류를 할 때
'왜 이렇게 본질적으로 날 안 믿는 것 같지?
왜 내 마음조차도 편안하게 안 받는 것 같지...?' 하는 생각에 서운함이 쌓이기도 하고
자기 시간이 제일 중요한 그 친구에게
내가 화를 몇 번 내기도 했어
나한테 그것조차도 내줄 수가 없니
연애할 준비가 안 된 건 아니니... 하고

싸움을 해결하는 방식도 많이 달랐어
걘 잠깐 말을 정리할 시간을 필요로 했고
난 바로 해결하지 않으면 감정을 키워오는 사람이었거든
이제 와서 보니 나 역시도 갈등 상황에 유도리가 없는 바보같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많이 후회가 되네...

어찌 되었건
서로 조금씩 노력하면서 가까워지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그 친구가 국방의 의무를 다 하고 돌아올 수 있게끔 군대로 걔를 떠나보냈어ㅋㅋㅋㅋ

급하게 공군 입대를 준비해서 가겠다고 하더라고
휴가도 자주 나올 수 있고
잘 노력하면 수도권으로 배치를 받을 수 있으니까
네가 가능한 나와 떨어진 걸 못 느끼게 하겠다고...

물론 군 입대하고 나서도 정말 많이 싸웠어
한 달에 한두번은 크고 작게 싸운 것 같아
입대한지 얼마 안 되어서
내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그걸로 우리 가족들도 많이 힘들어하면서 이혼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이었고
여러 이유로 내가 너무 지쳐서 그만하고 싶다고도 종종 그랬었는데
번번히 그 친구는 나를 잡아줬지
돌이켜보면 너무 미안해
걔는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이 친구가 친구 만나고 오겠다는 말을 잘 안 하더라고?
난 그게 나한테 시간을 더 쓰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줄 알고
친구 안 만나냐고, 나한테 쏟는 건 휴가 중 하루이틀이어도 되니까
원래 네 삶을 채우던 사람들도 같이 만나라
종종 그랬었는데 그냥 웃고 말더라고...

나한테 '~~야, 친구들한테 먼저 연락은 어떻게 하는거야?
그 친구랑 공유하는 취향도, 뭐가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말을 걸어야하는지 모르겠어...' 라고 하길래
친구잖아~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그냥 말 걸어봐! 하면서 그냥 여러 예시를 들어줬지
그 친구는 고맙다고 뽈뽈뽈 갔고.
그 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어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서로 얼굴 보고 이야기해보니까
한... 다섯 달 전 즈음부터
연락을 한 둘씩 끊었다고 하더라고
만나서 이야기할 것도 없고
사람들이랑 이야기할 에너지도 안 남아있다는 걸 많이 느꼈대
언젠가 불려나간 술자리에서
그냥 우두커니 앉아있으니까
친구들이 자기 침울함에 점점 전염되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

그러다가 마지막에 끊게 되는 인간관계가 나였다고 하더라
이 친구는 날 진심으로 사랑하는데,
난 이걸 어떻게 돌려줘야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내가 자신을 끌고 가는듯한 관계가 지속되고,
언젠가는 얘(=내)가 날 진심으로 싫어할 때 끝이 나면 어쩌지
싶어서 이별을 이야기했다고 하더라 나한테
...

워낙에 싹싹하고 성실한 친구라서
주변 선임분 중 한 분이 휴게실에서 파스타 만들어먹을 건데
너도 올래? 그랬대
안 갔다고 하는거야
...?? 왜? 라고 물어보니까
그 호의를 난 어떻게 돌려줘야하는지 모르겠고
그걸 기쁘게 받을 에너지도 안 남아있어서 거절했다는데...
마음이 미어졌어
이렇게까지 마음을 닫고 사는 애는 아니었는데...

그리고 난... 평상시에 이 친구에게 해주고싶은 말이 아주 많아서 (고마웠던 일화나 새로 발견한 장점, 도움이 될만한 자료들 등등)
따로 말을 정리해두는 메모장이 있었는데
갑자기 관계가 끝나게 되면서
이 말들만큼은 꼭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그걸 싹 긁어서 마지막 그 애 손에 들려주고 왔거든
우는 모습을 처음 봤어
자기는 이렇게까지 이기적인 선택을 했는데도
끝까지 자기를 보듬어줄 줄 아는 사람이구나 너는...
내가 이런 사람과 사랑했구나... 하면서 울더라고

전역일까지 반년 정도 남았는데
그 시간 동안 혼자 마음을 좀 비우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다가
학교로 돌아가기 전까지 (한 반 년 정도?)
여러 경험을 하면서
그동안 채우지 못한 자신의 내면을 좀 채우고 싶어졌대

어떤 마음일지 알겠어서
그 친구의 선택을 존중했는데
마음이 찢어지지... 당연히
은연 중에 알고는 있었다고 해도
너무 갑작스러웠고 진심으로 아끼던 사람이었으니까

같이 여행을 가거나 했을 때
내 짐을 먼저 챙겨주고, 여러 방향으로 날 위하는 마음씨도 정말 고마웠어
서로 같이 씻으면서 (꼭 성적인 의미가 아니더라도)
머리를 조심조심 감겨주던 그 애의 손길도
따듯한 물 아래에서 꼭 안아주던 그 애의 품도
다 씻고 나와서는 서로 화장품 발라주는 것도 너무 행복했어
그 때 그 친구가 '나 지금 진짜 사랑받는 것 같아. 너무 행복해서 이상한 기분이야' 라는 말을 할 땐 벅차기도 했어.
나도 이만큼 누군가를 아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리고 그게 얘라는 게 너무 기뻤거든

난 그 친구가 마음이 어느정도 채워진 사람으로
오랜 시간 뒤 다시 만나게 되면
좋은 마음을 오래 간직할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어
그 친구가 세상에 대해 잘 모르고 호불호가 불분명한... 약간 수동적이고 내향적인 친구였던 건 맞는데

우린 대화할 때 서로 정말 편안했거든
서로 들으려고 하는 태도도, 공유하는 유머코드도
되게 많은 것을 공유했어
공통된 관심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만나기만 하면 서로 수다스러워졌고...
서로 열심히, 건실하게 살고자 하는 방향이 같았고

그래서 그 친구가 오랜 시간동안 갖고 있던 고민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게
그 친구를 보냈어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언젠가 다시 웃으면서 만날 수 있을거라고 믿어
걔는 스스로도 모르는 것 같지만
그런 바탕에서도 나에게 조금씩 마음을 건넬 줄 아는 애였으니까

무엇보다 자기 확신이 부족했던 나한테,
나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준 사람이야
널 믿어, 넌 예쁘고 아름다워, 내가 본받을 수 있는 사람이야, 너에겐 빛나는 재능이 있어 등등...
너무 많은 응원을 받았어

난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떠나보냈지만,
그래도 이 친구와 내 젊은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괴롭지만 행복했단다 ☺️

아주 길고 내밀한 글을 읽어줘서 고마워.
우리 둘이 행복하길 응원해줄래?
나도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자기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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