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들아 안녕 돈 빌려달라는 엄마 후기 들고왔어
(텍압 스압)
써클에 글을 올리고 또 서로 속얘기 다 터놓고 지내는 믿을만한 언니한테도 물어봤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 푼도 안 빌려줬어.
언니가 처음엔 빌려주더라도 어머니를 신용하는 만큼, 못 돌려받아도 괜찮겠다 싶은 만큼만 줘야지 2300만원을 전부 다 줘버리는 순간 파국이라고 했었어.
이후에 엄마의 평소 경제관련 이슈나 가족관계가 어떤지를 듣더니 경제관념이 좋지 않으신 분인데 남편한테는 비밀로 해야되면서 이제 막 24살 된 대학생 딸한테는 있는만큼 빌려달라고 하면 돈을 받을 수 있을리가 없다고 애초에 나한테 말한 일들이 사실인지부터 확인해야될 거 같다더라.
돈을 받더라도 지금 24살인 너한테 2300만원인데 나중 가면 어떨 거 같냐면서.
자기 같으면 큰맘 먹고 천 만원 빌려줄 수 있는거면 못 돌려받을 거 감안해서 최대 500만원이고 어차피 2300만원을 못 채워서 대출 받아야되는거면 그냥 받는데 맞다고. 그리고 한 번 돈이 오가면 앞으로도 기댈 곳이 너 하나 뿐이기 때문에 계속 손을 벌릴 거라고.
근데 나도 이 점을 가장 우려했던 거라 마음 다잡고 그냥 돈이 없다 거짓말하고 단 돈 십원도 안 줬어.
처음엔 최근 지출이 너무 커서 나도 아빠한테 받는 용돈으로 생활하는 수준이다. 직장인도 아니고 학생인데다 졸업 전시도 앞두고 있어서 돈 나올 곳이 없다. 고 했더니 그래 당연히 쓸 돈 빼놓고 남는 돈 얼마냐고 계속 얼마 있는지, 아빠한테 용돈 얼마나 받는지를 물어보더라. 정확한 액수를 알게 하면 안되겠다 싶어서 생활비 정도만 받는댔더니 이것도 백오십 정도 받느냐고 자꾸 액수로 물어보더라고. 어 그정도 받고 딱 잘라 나 돈 없다고 말했더니 돈을 그동안 좀 모아뒀을 줄 알았는데 없네. 알겠어 너무 걱정하진 마. 라고 했어.
알겠다고 이제 전화 끊겠다고 하는데 내 목소리가 너무 떨리는 거야. 돈이 된다면 얼마나 보내줄 수 있겠냐도 아니고
‘지금 얼마 있는데, 평소에 얼마 받는데’ 라는 말이 남는 돈 되는대로 보내달라는 식으로 느껴져서 그 사실이 제일 괴로웠어.
성장기 내내 집에 돈이 없녜 어쩌녜로 싸우는 걸 들으면서 자라서 여태 돈 걱정 안 들게 하려고 나는 나대로 노력하면서 모은 돈인데
그동안 엄마한테 생일 선물로 20만원씩 용돈 부쳐주고 돈 급하면 필요한 만큼 빌려주고 돌려받고 했던 적이 몇 번 있어서인지
본인은 자각이 없겠지만 엄마가 나를 돈 나올 구멍이라고 생각했나보더라구.
못 빌려준다고 하는 전화 내내 빌려줬으면 앞으로도 언제든지 손 벌리고 기댈 곳으로 여기겠구나. 얼마 있는 지 알려주고서 조언 구하지도 않고 2300만원을 다 줬더라면 나는 그냥 호구 잡혔겠구나 라고 생각했어.
한편으론 내가 빨리 엄마 손이 닿지 않을 곳으로, 지금보다 더 멀리 나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효도를 안하겠다거나 부모와 연을 끊겠다는 게 아니라 돈을 빌려주진 말지언정 잘 벌어서 용돈 챙겨줄 때만 잘 챙겨주자 싶어.
전화하기 전까지는 공황 온 것처럼 토할 것 같고 괴로웠는데 오히려 지금은 좀 편안해졌어.
이번 설에 본가 가면 엄마 얼굴 봐야하는데 아빠한테 비밀로 부쳐야될 말이면 나한테도 하지 말아달라고 얘기해볼까 해. 이건 좀 더 마음을 다잡아야겠지만 :)
이 긴 글을 누가 얼마나 읽어줄 진 모르겠어. 그치만 혹여나 자기들 중에 비슷한 고민 중이라 이 글까지 흘러들어왔다면 괴롭더라도 끊어내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