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들아 나 취미삼아 소설 단편 형식으로 끄적이는데 평가좀 해주라
다른데 올리기는 쬐끔 쑥쓰러움... ㅎㅎ
눈덮인 들판에 홀로 핀 고고한 들장미를 본적이 있는가.
풀잎이 싱그럽고 고요한 가운데, 홀로 찬란히 꽃을 피워낸 들장미를. 해충에 뜯기고 찬바람을 맞을지언정 꺾이지 않는 꽃송이는 그 향이 짙은법. 여러 벌이 꼬이고 꺾으려는 이들이 다가와도 홀로 가시를 세우며 살아간다네.
그럴수록 더 탐스러운걸 아는지, 모르는지.
-
추위가 늘 함꼐하는 이 고즈넉한 영지에서 지낸 세월이 태어나고부터이니, 어언 30년이 다 되어갔다. 요란한 수도는 소란과 암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부러 이곳에서 지내자니 평온함보다 지루함이 앞섰다. 눈은 하얗고, 녹을줄을 모르며, 잠잠했다.
하루하루가 지루했지. 영지 순찰, 성벽 점검, 드넓은 성에 아무리 사용인들이 있다한들 죄 높으신분 눈치보기 바빴으니. 누구 하나 눈에 띄는 이들이 없더군. 평민들은 하나같이 잘 살면서도 누가 잘 살게 해준건지 모르는지, 순찰때마다 두려운 눈으로 눈치나 보고있고. 모든게 평화로웠다. 지독히도 지루할만큼.
햇빛이 크게 따스하지 않은곳이라, 네가 더 눈에 띄었을지도 몰랐다. 꽃이라곤 온도도 습도도 관리해야 겨우 온실에서 하나 필까말까 한 곳이라. 야생화같은 넌 정말이지… 진귀했으니까.
널 처음 마주친건 영지 순찰 중, 마을 한구석이었다. 오늘도 지루하겠지 하며 천천히 순찰을 돌던 중. 죄 집 문을 걸어잠그고 숨죽여 순찰대가 지나길 기다리는 와중에, 마당에 나와있는 넌 흔히 남자들이나 하는 장작 패는 일을 하고있었다.
그 가냘픈 몸이 도끼질을 하는것도 신기한게 제법 안정적인게 더 신기했다. 진작 부러졌을것같은 손목이, 하얀 손이 도끼를 그러쥐고 퍽퍽 장작을 패는데 묵묵히 계속 이어가는게 기이할 정도였다. 한아름 팬 장작을 들고 들어가는 뒷모습이, 꽉 묶어둔 붉은 머리카락이 정말… 탐스러웠다. 장미의 꽃잎처럼.
눈동자는 어떨까. 더 보고싶었다. 싱그러운 녹빛일지, 사랑스러운 갈색일지, 밤하늘처럼 찬란한 검정일지… 궁금했다. 미치도록. 뭘 담았는지 숨죽여 들여다보고싶었다.
갑작스럽게 멈췄어서일까, 보좌관이 어리둥절하게 날 보고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아무렇지않은척 계속 말을 몰았다. 검은 말은 계속 걸었다.
겨울, 여전히 눈이 한참 내렸다. 영지민들이 하나씩 굶을 때였다. 대공저에서 내어주는 식량으로 겨우 생을 이어나갈 때. 전년도만 해도 병사들을 보내어 배분했을 식량이지만 이번에는 부러 인력을 보내 직접 가정 수대로 가져가도록 명했다. 네가 올까 싶어서. 사내가 할 일을 하고있던 너이니, 분명 직접 올거라고 생각했다.
판단은 옳았다.
하나같이 허리를 숙이고 조아렸다. 식량을 나눠주셔서 감사하다는 둥, 언젠가 은혜를 갚겠다는 둥… 하나같이 시시한 소리였다. 귀담아 듣지도 않았다. 내 눈, 시린 겨울을 담았다며 한참 떠들어대던 새하얀 눈동자는 오직 붉은 머리카락만을 찾아다녔다. 불꽃같으면서도 차갑던 그 색을.
기어이 찾아냈다. 고고히 혼자 걸어들어오는 넌 다른 영지민에 비해 허름한 옷을 입고있었다. 몇번씩 헤진 부분을 고친 티가 나는 옷과, 수수하다 못해 꼬질꼬질 머릿수건. 그렇게나 그려왔던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보라색이였다. 눈밭에 조용히 핀 라벤더처럼 그윽하게 시선을 이끄는, 그런 색. 조용히 다가와 식량 배분을 기다리듯 줄을 선 너는 북부에 사는게 믿기지 않을만큼 화사했다. 허름한 옷으로도, 찬란했다.
잔잔히 다가와 조용히 식량을 받았다. 최소한으로 예의를 차리려고 살짝 고개만 숙이고 돌아섰다. 말 한마디 않는게 너다웠고, 또… 그래. 목말랐다.
곱게 뿌리내린채 한껏 가시를 세운 꽃을, 뿌리채로 뽑아다가 온실에 곱게 넣어두고싶었달까.
핑계를 찾았다. 널 어떻게 다시 대공저로 들여보낼지. 허름하던 옷부터 굳은살 가득한 손까지, 하나하나 떠올랐다. 당연한거였다. 머리에 새겨넣었던거니까.
지원 명목으로 다시 불러들였다. 보좌관을 통해 데려온 네게 새 옷을 주고, 보다 풍족한 음식을 안겨줬다. 조금이라도 웃을까 싶어서. 넌 실낱같은 미소 한번 보이지 않았다. 그게 더 갈증스러웠다.
놓아줄 생각은 없었다. 다시는 보내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차피 넌 혼자가 아니었던가. 혼자 지내고, 부양할 가족도 남편도 없는 홀몸. 그러니 여기서 지내는게 훨 편하고 안전하지 않겠나. 내가 지켜줄테니. 그저 널 지키는거라고 생각했다. 변명일지 몰라도.
집을 새로 지어준다는 핑계 하에 널 대공저로 들여왔다. 다 허물어져가는 집은 위태로웠고, 혹 네가 상할까 염려되어서. 풍족한 식사, 질 좋은 옷과 푹신한 잠자리 모두 최고급으로 내어줬다. 따뜻하고 평화롭게.
낯선 환경에서도 넌 한없이 꼿꼿했다. 스테이크를 써는 손은 형편없이 떨렸고, 칼질은 서툴었다. 보좌관이 대신 다가오던걸 손짓으로 제지했다. 감히 방해하게 둘 생각은 없었다. 저 여린 것에 손을 대는건 나뿐이여야 했다.
“서툴군.”
“...네.”
단답이였다. 그래도 좋았다. 무덤덤한듯 경계어린 목소리조차 사랑스러웠으니까.
조용히 접시를 끌어다가 대신 썰어줬다. 한입 크기로, 먹기 편하게. 몸이 작으니 입도 작을것같아 부러 좀 더 작게 썰어줬다. 부족할까 조용히 흘끗거리면서.
넌 독서를 즐겼다. 허름한 집에도 닳을대로 닳은 책이 있었다더니, 차분히 책을 읽는 모습이 아주… 아름다웠다. 조용하고, 차분하고, 지적인 모습이었다. 그게 더 자극적이었다.
방해하고싶다가도 가만히 앉아 종이를 넘기는 네 손끝이, 날이 갈수록 굳은살이 없어져가는 손이 보기만해도 탐스러웠다. 손대지 않아도 충분히. 그래서 가만히 지켜봤다.
한참 집중하다가도 문득 눈이 마주치면 경계어린 눈으로 보는게, 꼭 어린 고양이같았다. 나비를 쫓다가 인간과 마주친 천진난만한 아기 고양이. 여린 것. 그래서 사랑스러운 것.
3개월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침실로 들어갔다. 이제 늦은 시간이라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앉아있던 널 슥 끌어다가 품에 앉혔다. 넌 여전히 가벼웠다. 그간 먹였던게 모두 어디갔나 싶을만큼.
“분명 골고루 먹었을텐데. 살이 도통 안찌는군.”
앉혀지자 가만히 숨만 쉬던 네가 잔잔히 입을 열었다. 늘 단답만 하던 입이 드디어 길게 말했다.
“왜 가둬두세요.”
“가둔적 없다만.”
가두지는 않았다. 보호했을뿐이지.
바깥은 춥고 외롭지않나. 특히나 넌, 혼자 외로이 살았으니. 이 추운 북부에서, 혼자, 그 여린 손으로 장작을 패면서. 허름하고 얇은 옷으로 추위에 떨며 장작을 패고, 굶주렸잖아.
가만히 네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가죽과 뼈밖에 없던 손목이 살짝 살이 올랐다. 그건 그나마 만족스러웠다. 내 것이 조금이나마 사람다워져서. 더 예뻐져서.
넌 기가 차다는듯 비웃음을 흘렸다. 잔잔한 목소리가 묘하게 날카로웠다.
“그럼, 내보내주세요.”
“산책이 하고싶나. 정원이 넓다만.”
“내보내달라고요. 대공저 밖으로.”
당돌했다. 눈을 똑똑히 마주치면서, 서늘하게 눌러담은 말을 그리 내뱉었다. 깜찍하게도 조금 떨면서.
잔잔히 품에 꽉 끌어안고 속삭여줬다. 밖은 춥고 거칠어서, 얼어죽을지도 모른다고. 그 여린 꽃잎이 상해버릴거라고. 내가 널, 안전하게 보호해주는거라고.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단 한마디도.
네 손이 날 밀어냈다. 일어나려는듯 움직이는 널 도로 끌어다 앉혔다.
“어딜 가려고.”
“놔요,”
“갈곳도 없잖아.”
네가 비로소 멈칫했다. 그래, 넌 갈곳이 없다. 이 전에 있던 집은 허름하여 위험하단 이유로 부숴버렸고, 짓지도 않을 새 집이 지어질때까지 대공저에서 지내라고 했으니까.
네가 돌아갈곳은 여기, 안전하고 따뜻한 대공저뿐이었다. 내 시선 아래.
내가 손수 만들어준 상황에 감명받은건지 포기한건지 넌 푹 고개를 기대왔다. 한없이 사랑스러워 천천히 쓰다듬었다. 처음에는 거칠던 머릿결이 부드럽게 풀려있었다. 열심히 애타게 관리해준 보람이 있게.
이제, 널 온전히 품을 날이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