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그동안 만나던 사람이랑 헤어졌어.
집도 가깝고 둘 다 재택근무가 대부분이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거의 매일 봐왔어. 서로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려고 눈에 보이게 노력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다툼 없이 늘 깔깔 웃으면서 지냈어.
몇 주 전 쯤 대화중에 그 사람이 본인은 새로운 사람도 만나보고 싶고, 여러 사람들 틈에 어울려 이것저것 다양하게 경험하고 싶고, 내가 본인에게 맞는 짝인지 모르겠다는 등의 말들을 한 적이 있어. 매일 비슷한 생활패턴에 똑같은 사람(=나)과 시간을 보내는게 지루하다는 얘기를 하는 거였어. 두 사람이 무탈히 잘 지내서 난 좋은 연애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크게 충격받았어. 난 이 말을 정리하자는 걸로 이해했지만 상대는 헤어지자는 건 아니고 요새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말로 일이 일단락됐어.
이 일 이후 이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관계를 대하는지 알아버려서 나도 끝을 생각하고 지냈지만 당장 불화가 없고 같이 지내는 시간이 좋으니 나도 당장은 말은 꺼내지 않았어. 그 후로도 똑같이 잘 지내다가 엊그제 결국은 같은 이유로 그 사람이 얘기를 꺼냈어. 본인이 원하는대로 관계를 끊겠다 통보하면서도 서사를 만들고 좋았던 기억들을 읊고 나의 좋은 점들을 말했어. 현실은 지루해지면 바로 놓을 수 있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으면서 마치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것처럼 안타깝고 아릅답게 자꾸 포장하는게 정말 분노가 올라왔어.
나는 연애에서 상대를 인생의 파트너로서 존중했는데, 이 사람은 늘 연애초반처럼 설레고 예쁜 모습만 보여주는 (집에서 편한 그런 모습 말고) 데이트메이트를 원했던거니 나에게 감정이 식을 수 밖에 없었겠지. 30대의 나이에 이런 가벼운 연애를 원하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준 내 자신에게 화도 나고 안쓰럽기도 하고 왜 나는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됐을까 하는 생각에 무척 속상해. 그치만 밉다고 좋았던 마음이 갑자기 사라지는게 아니니 보고싶은 마음도 드니 답답하고.
속이 문드러져도 일은 해야하는데 집중도 안되고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났다가, 찾아가서 죽여버릴까 싶다가, 역시 모든건 감정 낭비다 싶고 뭐 그래. 나는 이걸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일인걸로 화를 가라앉히고 싶어. 빨리 마음에서 떠나보내고 싶어. 아무 말이나 다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