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 안녕 자기들 늦은 시간에 심심할까봐 질문 던져놓고 가볼까 해 ㅎ
남친이랑 사귀고 있는데 뭔가…. 뭔가야.
이 찝찝한 기분 진짜 뭐지?
하하 사실 내가 지금 너무 너무 너무 우울하거든
아직 스무살 초반인데 며칠 전에 사후피임약을…먹게 되었어. 그날의 공기 그날의 기분 그날의 날씨 그냥 지나가던 사람들 그때 분위기 잊혀지지가 않아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는데 우리 부모님 한테도 비밀 연애거든 그걸 떠나서라도 누구한테 말할 수가 있겠어?
남자 친구 말로는 콘돔이 찢어졌다는데 아는 언니한테 물어보니까 일부러 그랬던 거 같대 난 사실 반반이야 연애 경험이 이게 처음이기도 하지만 아니, 어쩌겠어 믿어야지
며칠 전에 남친 때문에 사고가 있었어. 난 팔에 금이 갔고 걘 멀쩡해. 그 이후로 나한테 엄청 더 신경 쓰긴 하지만…그러다 콘돔 사건이 있었던 거지….
피임약 먹고 부작용이 있을 거란 말은 알고 있지만 난 생리주기도 원래부터 불규칙 했거든 겨우 맞춰 놨는데 이거 먹어서 어떻게 될까봐 그것도 불안해
부정 출혈도 좀 있었고 너무 어지럽고 배도 좀 아파
근데 무엇보다 더 힘든 건 감정 기복이야
정말 너무 너무 힘들어
근데 이걸 말할 사람이 남친 밖에 없잖아
며칠 되지도 않아서 너무 무섭고 너무 힘들어
남친은 나름대로 열심히 도와주는 거 같긴 한데 난 왜 자꾸 더 힘들지? 난 왜 더 이렇게 슬프지?
나 진짜 무서워
그냥 무서워
결국 난 그 당일에 얘기를 했어. 그래놓고 걘 집에 가자마자 자느라 연락두절. 몇 시간 후 전화하다 내가 시간 갖자고 했어. 그랬더니 엉엉 울더라.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다신 안 그러겠대. 피임약 먹자고 그냥 쉽게 말해서 미안하다…. 그래도 진심 같았어.
그러고 나서 어제 남친이 어쩔 수 없는 약속 때문에 밤에 나갔다 왔어. 내가 정말 정말 불안해서 무서워서 나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 나도 그냥 일단 허락은 했지 연락은 십 분텀으로 잘 했고 그때 나한테 깊은 얘기 몇 개를 했어 진심어린 말들이라 어제는 조금 덜 힘들었거든 오히려 위로가 많이 됐어. 감정 기복도 좋아질 것 같았어
근데 오늘 아침에 남친이 엄청 늦게 일어나고 나서 하루 종일 게임을 했어 난 그동안 너무 힘들어서 아프고 슬퍼서 누워만 있었어 중간 중간에 연락이 되긴 했는데 너무 힘들었어
근데 내 상태가 더 안 좋아지기 시작을 했어 약 때문인지 몰라도 열이 좀 났고 감정 기복이 더 심해졌어 깁스 한 팔을 샤워하려고 풀렀는데 살 안쪽이 엉망이었어
살성이 약해서 붕대 때문에 알레르기 반응처럼 난리가 난 거야. 징그러웠어. 좀비 같았어. 그걸 보는 순간 더 우울해지기 시작했어.
왜 나만? 왜 나만 이래야 하지?
결국 다친 건 나였어. 나만 아파. 나만 힘들어. 물론 내가 위로 해 줬고 괜찮다고 남친에겐 그랬지만 아니? 난 너무 힘들었어. 지금 당장이라도 우울하고 너무 슬펐어.
그런데 하루종일 게임하느라 연락도 대충 하던 남친이 하는 말은 자라는 거였어.
팔 보여달래서 보여주니까 생각보다 별 거 아니래. 몰라. 모르겠어.
난 성적에 욕심이 있어서 이 꼴을 하고도 과제는 해야겠었거든. 그걸 걔도 모르는 게 아니야. 그렇다고 엄청 늦게 자겠단 것도 아니었어. 항상 나도 걔도 늦게 자는 편이니까. 근데 자꾸만 자라는 거야.
나한테 도망가지 말라 내가 어쩌고 저쩌고 하겠다, 그런 말을 하길래 나 불안하지 않게 하려나 애정표현인갑다 하면서 있는데 갑자기. 자래.
빨리 자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넌 뭐 할 거냐, 그랬더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래. 빨리 자래. 걱정되어서 그러냐고 했더니 몰라. 그냥 자래.
그 자라는 말 하나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못 자고 있네… 짜증이 나고 너무 서운하고 슬퍼서 어. 이렇게 보내고 안 보는데, 또 장난 식으로 연락 보냈더라. 잘 자라고. 너무 서운해. 너무 너무 서운해.
근데 내가 이런 거에 서운함을 느끼는 게 맞을까?
결국은 그런 생각도 들어. 영통을 하던 내 얼굴이 자기 생각보다 덜 아파 보였던 걸까? 그래서 그럴까.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난 왜 이러지? 난 그냥 너무 혼란스러워… 너무 무섭고 슬프고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싫고 내가 그 약을 왜 먹었는지… 지금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 사람도 약 먹어봤을까 생각하는 지경이야 나만 이런 걸까? 난 그 날 깁스를 한 팔로 그 애와 관계를 했고 아팠고 힘들었고 모르겠어…모르겠어 머리가 터질 것 같아
난 피임약을 먹게 된 경위가 화가 나는 게 아니야. 물론 아주 조금은…조금이지만 의심은 돼. 그 애는 자꾸 혼전임신을 하자, 그냥 애 갖고 싶다 그런 말을 진심으로 했으니까. 그래도 찾아보니까 있을 수는 있는 일이래. 아니? 아니…
그 애의 태도가 더 화가 나. 아니 모르겠어…아니 정말 모르겠어 너무 힘들고 무섭고 슬퍼
나 정말 어떡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