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쾌한 아침을 맞이 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 힘든 오후였다. 아침은 순조로웠다, 아침을 먹고, 조카랑 보석십자수도 하고, 책도 읽고, 반려묘도 귀여워해주며 즐거웠다. 일은 본가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ㅇㅇ역으로 가는 차안에서 시작되었다. 또 시작된 살빼라는 아빠의 잔소리, 참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참지 않았다. 지금까지 잘도 참았는데, 왜 이번에는 참지 않았을까? 조금 후회도 되지만 어쨌든 내 생각을 필터링 없이 쏟아냈다. '맨번 돼지 같이 하고 오는 너는 성인병 걸려 뒤질거다'(말 한토시 틀리지 않고 실제로 이렇게 말했다) 라는 아빠의 악담이 참을 수 없었다. 내 나름데로 야근이 많고 빡센 회사를 견디면서도 의지를 다지고 밤에 산책도 해보며 조금이나마 빼고 있는 내 노력을 다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것 같아 아빠에게 화가났다. 아빠는 내게 관심이 없고, 매번 만나면 그말밖에 하지 않으며, 아빠를 다시 만나지 않을거다 등 나도 이번엔 말이 심하긴 했다. 하지만 아빠는 독재자이기에 내 말 따위 그의 마음에는 닿지 않았다. 차를 과격하게 몰며, 잔소리 한마디 했다고 짜증낸다며 콱 다 죽여버릴꺼라 했다. 엄마는 아빠의 행동을 다급히 말리고, 나 또한 말렸다.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고, 그만하라고, 나 내려서 혼자가겠다고. 잠시 정차하여 아빠를 엄마가 진정시켰다. 그렇게 다시 차가 굴러갔다. 아빠는 이 작은 가족이라는 사회의 독재자였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정말 콱 다 죽어버리면 이 고통이 끝날까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아빠의 생각이 정말 궁금했다. 아빠에게 물어봤다 뭐가 그렇게 나에게 불만이냐, 나는 지금까지 엄마 아빠 말 그 누구보다 잘 들었다. 언니보다도 순종적으로 살아왔고 하고 싶어도 하지말라는 것도 한번도 한적이 없다. 그런데 왜 살 하나 때문에 죽으니 마니 하냐고... 아빠는 알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사랑하는 딸이고, 지금까지 순종적으로 잘 해왔으니 이번에도 살을 빼면되지 않냐고 내게 말했다. 나는 더이상 대화할 힘이 없었다. 그리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살 때문에 아빠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아야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많던 적던 그게 맞는걸까? 나는 대화하기를,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저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멀리. 내가 살을 빼던 빼지 않던 상관없었다. 언제 또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내가 있다면 나의 목숨을 쥐락펴락하겠구나. 내가 29년 살아올 동안 아빠는 변한게 없었다. 대화가 끝나고 나서 아빠는 잔소리를 계속했다. 그리고 나는 살기위해 내가 아닌 나를 연기했다. 어느때보다 순종적인 나로. 그리고 몇번이나 당부했다. 배웅은 필요 없으니 역에 나를 내려준 후 바로 돌아가라고, 나 혼자 알아서 돌아가겠다고. ㅇㅇ역에 도착하자 마자 나는 차에서 뛰어내려 달렸다. 뒤에서 아빠가 나를 부르며 잘가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뒤돌아 보지 않았다. 눈물이 마르지 않고 계속 뺨을 타고 흘렀다. 내 안의 아빠는 이제 죽었다고. 이제 나는 아빠가 없는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