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망한 연애썰을 궁금해하길래
썸남(그들도 만만하지 않다) 빼고 몇 명만 풀어볼게.
일단 나의 첫 남친만.....
첫 연애는 이십대 중반이었고
부모님 지인이 나 대학교 다닐 때부터 괜찮은 남자가 있다고 했는데 그쪽이 8살 위였어.
처음엔 나 졸업학기 때여서 거절했고
다음해에는 일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어서 거절,
그랬는데 그 다음 해에 내가 업무에 너무 현타 와서 그만둔 상태였는데 여전히 그 남자분을 만나보라더라고.
나 지금 백수인데도 만나고 싶다고 하고 의아하기도 하고,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어떻게던 소개시켜주려 하나 싶어서 만났어.
남자분 피부 하얗고 동안에 청초하게 생겼고 차분한 성격이었는데 처음엔 자기가 나이가 많으니까 혹시 나는 생각 없는데 부모님 등쌀에 밀려서 나온건서 되게 조심스러워하더라고. 그런데 최종결정자는 나라고, 내가 궁금해서 나왔다고 하니까 좋아했고 편하게 대화했어. 그 당시 나는 일 쉬고 있었지만 둘 다 의료인이어서 통하는 주제가 많아서 대화가 잘 통했고 배우는 점도 많구나 했고 호감이었어.
다음번에 애프터 신청해서 만나는데 진지한 관계로 만나자 해서 사귀었지. 그렇게 두 달 만났나. 화이트데이 때 표정이 안 좋길래 물어보니까 병원에서 문제가 있었더러고. 개인정보도 있고 해서 상세하게는 얘기해주지 않았지만 나도 헉교에서 배운 거랑 임상경험을 기반으로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상담을 해줬지. 그랬더니 내가 한참 어린데다가 자기 분야 문제를 나한테 상담하는 상황이 민망하기도 하면서 내가 의지가 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하필 화이트데이 때 이런 거 상담해서 미안하다고 하고 남친이 집에 데려다줬어.
그리고 며칠간 연락두절됐다....?
난 화이트데이 때 그쪽이 너무 스트레스 받는 게 마음에 걸렸어서 전화했는데 안 받고 카톡도 안 읽고 그래서 고민하다가, 지금은 머릿속이 복잡하더라도 무조건 연락을 끊지는 말자고. 내가 업무상으로 도움을 줄 순 없더라도 정서적 지지라도 해줄 수 있다면 그런 거라도 해주고 싶다, ㅇ 한 글자만 보내도 되니 3일 이상 연락두절하진 말아라 그런 내용을 남겼어. 그리고 3일이 지나도록 읽고도 말을 안 하더라고. 아 이렇게 첫 연애가 끝나는구나 했지.
그리고 일주일째 되던 날 새벽 4시에 카톡 하나 왔다.
[이런 식으로 끝내서 부끄럽네요. ㅁㅁ씨 덕분에 즐거운 봄날이었어요]
이러면 안 되는데 무슨 ㅈㅅ 암시글 같잖아.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기억남....
자다가 카톡 보고 놀라서 전화했는데 전화기 꺼져있다고 하지, 다음날 아침 되니까 없는 번호라 그러지, 나 진심으로 놀라서 어머니에게 달려가서 새벽에 이러저러한 카톡 받았다 혹시 무슨 일 생긴 거 아니냐고 주선자 아주머니에게 연락해봐라 했어.
'아마도' 살아있대 ㅎㅎㅎ
아들이 번호를 없애버려서 부모님도 연락이 안 된대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었음)
그 며칠새 집에서 짐도 싹 빼고 직장 그만두고 잠적했다더라고.
사람이 이쯤 되니까 실연의 아픔이고 뭐고 무서워서 최대한 침착하게 카톡 보냈지. 번호는 바뀌어도 계정은 살아있으면 언젠가 보겠지 하고
[저도 오빠 덕분에 즐거웠어요.
언젠가 이 카톡을 보게 된다면 남녀관계가 아닌 오빠동생으로라도 연락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여름에 저 ㅇㅇ에요. 이 번호는 부모님도 모르는 번호에요. 하고 연락이 오더라. ^^
솔직히 사람을 이런 식으로 걱정을 시켜? 하고 속에선 열불이 났지. 하지만 거기에서 감정적으로 굴면 안 될 것 같아서 진짜 속없는 사람처럼 몇개월간 마음의 벽을 부술 수 있도록 진짜 아무렇지 않은 척 계속 연락했어. 그러면서 갑자기 잠적하고 이별 통보한 이유를 알아내보자 속으로 다짐했지.
그렇게 몇개월간 연락 했고 어느 날 엄청 큰 사건은 아니었지만 뉴스에 자기 일이 나올거라고, 놀라지 말라고 하더라고. 그리고 그간의 일들을 말해주더라. 머리로는 상황을 이해했지만 난 이미 미련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쪽은 내가 계속 연락하니까 내가 자길 아직도 많이 좋아하는구나 싶었대.
내가 잘못했지. 호기심 해결됐다고 탁 끊기는 애매하고 그쪽이 내 멘토 같아서 연락을 이후에도 했어. 그리고 그쪽은 재결합해도 되겠다 했나봐.
나중에 겨울 초입 때, 내가 날 이렇게 좋아해줄 줄 몰랐다고 다시 만나보는 거 어떠냐고 하길래
????? 오빠동생 아니었어요? 하고 내가 반문하고 그 이후엔 어색해져서 점차 연락 적어지더니 끝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