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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자기2024.05.04

"대한민국에서 K-장녀로 살아간다는 건"

사실 나는 그렇게 애교많은 성격은 아니야.
성장과정에서 가끔은 애교가 필요하다는 걸
남동생을 보며 깨달은 거지.

남동생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는 걔는 항상 모든 게 쉬웠어.
고집있는 나와 다르게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늘 엄마의 분노를 피해갔고, 나는 눈치보느라 말조차
꺼내지 못한 걸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하며 얻어갔지.

우리집의 주인공은 항상 내 동생이었어.
말로는 첫째인 내가 듬직하다 하지만,
나와 같이 있는 내내 대부분의 대화를 남동생으로 시작해 남동생으로 끝내는 우리 엄마.
한 번의 입시 좌절을 겪고, 재도전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 내 앞에서, 너는 남자니까 누나보다는 좋은대학 갈거야를 대놓고 말씀하시던 할머니.
남동생과 둘이 있으면 대화를 잘만하면서
나와 둘이 있을때는 유독 말을 아끼던 아버지까지..

근데 있잖아.
그런 스포트라이트가 단 한 번
내게로 집중되는 순간이 온다면 너흰 어떨 것 같아?

내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은
오로지 '높은 성적'과 '상장'을 받았을 때 뿐이었어.
지금 생각하면 무엇을 위해 그랬나 싶은데
어렸던 나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애정에 목말랐던 거 같아. 그래서 미친듯이 공부했지. 이런 방식으로라도 나를 증명하지 않으면 내 존재는 투명해진 나머지 사라질 것 같았거든. 근데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내게 남은 건 더 열심히, 잘해야한다는 강박과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거지"라는 부모님의 뻔뻔함이었어.

나는 그저 "잘했다. 잘하고 있어"라는 한 마디가 필요했을 뿐인데,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해야하나..? 서러워서 방에서 숨죽이고 울고있는데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엄마가 들어온거야. 지금은 이사와서
내 방이라도 생겼지만 그때는 내 방도 하나 없었거든..
나는 엄마가 말없이 안아줄줄 알았어. 근데 우는 내가
이해 안된다는 듯 오히려 화만 내더라. 그 뒤로는 그래
내 방이 생길 때까지 집에서 단 한번도 제대로 울어본적이 없는 것 같아.

바보같이 하고 싶은 것 하나 요구하질 못했어.
동생이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울 때, 나는 "넌 어차피 재능도 없잖아"라는 소리를 들어야했고.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어. 학교폭력을 당하는 순간까지도.

힘들어서 털어놓은 내게 아빠는 "네가 잘못한 게 있으니 당하는거지. 네가 잘하면 멀쩡한 얘들이 널 괴롭히겠냐" 반문했고,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내게 "그래봤자 3년인데 그거 견디는 게 뭐가 어렵냐고. 나중에 사회나가면 더 힘든일이 많은데 그러면 넌 그때마다 도망칠거냐고" 말하는 엄마 앞에서 정말 무너졌던 거 같아.

솔직히 우리집이 좀 그래. 남아선호사상에 더해 가부장적인 집안 환경의 표본이라 그야말로 숨이 막혔어. 그래서 대학에 오면 좀 나아질 줄 알았다? 무력했던 중고등학생 때와 달리 돈을 벌 수 있는 나이잖아. 어떻게든 벌어서 독립하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달려왔어.

그러다가 최근에 동생과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가 자는 줄 알았나봐. 거실에서 둘이 이야기하더라고.
"니네 누나였으면 말도 못 꺼내게 했어.
넌 조용히 하고 있어. 나중에 정 안될 것 같으면
방을 얻어주던 할테니까"

나는 노력해야 겨우 얻을까 말까한 걸
너는 부탁만 하면 이리도 쉽게 얻을 수 있었구나.
나한테 안된다하던 것들이 동생 앞에서 가능해질 때.
그제서야 체념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인정받기를 내려놓고, 나도 나하고 싶은 거 하고 못하게 하면 소리지르고 그냥 울었어. 그냥 말해서는 안들어준다는 걸 너무 오랜 시간동안 깨달았거든.

맞아. 나는 우리가족이 너무너무 힘들고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 그리고 그럴 수 있을 줄 알았어. 근데 최근에 엄마가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지고, 나는 절대 그러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어. 아픈 엄마에게
소리지르는 아빠나 그러거나 말거나 기대하고 있었던
자취방을 조금 미루자는 엄마의 말에 짜증내며 문닫고 나가버리는 동생이나.. 그제서야 보이더라고. 엄마도 이 가부장적인 집안 환경의 또다른 피해자였다는 걸
그래서 외면할 수가 없어지더라. 이 다음은 같은 장녀라면 너무도 예상 가능한 스토리일거라 생각하는데.. 뭐 어쩌겠어 결국엔 독립 포기하고 본가에서 살고있지

주변 친구들도 대충 사정을 아는지라
이런 나를 보면서 정말 답답해하면서
그냥 나오라고 뭐가 좋다고 거기 있냐고 하는데
얘들 말대로 내가 바보인걸까...

(원래 글 잘 안쓰고 구경만 했는데
주제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이 너무 와닿아서
나도 답답해서 새벽에 푸념 좀 늘어놓았어..
여기까지 읽어준 자기들 고맙고.. 나와 같이 동시대에
K-장녀로 살아가는 자기들도 항상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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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ser thumbnale
    숨어있는 자기 1

    나도 장년데 가끔 힘들다...우린 이혼가정이라 엄마가 나한테 많이 의지하는데 난 고등학교 졸업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또래 여자애들보단 많이 벌지만 이제 20대초반이고 아직 준성인이라고 생각하고...내 인생인데 가끔 엄마가 나한테 기대는게 힘들때도 있고 간섭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고 이래라저래라 하는것도 힘들더라,.. 우리 힘내자!

    2024.05.04좋아요1
  • user thumbnale
    숨어있는 자기 2

    k장녀들을 힘들게 하는건 언제나 인정욕구인것 같아. 일상적으로 누구도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삶에 너무 익숙해서 항상 뭐든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하잖아. 자기가 그렇게 몸이 안좋은 어머니를 돌보고 괴롭게 살아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자기를 인정해주시거나 이해해주시지 않을거야, 당연히 자기가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실거야. 그럴바엔 조금 모질어도 자기는 자기의 삶을 사는게 어떨까? 어차피 그렇다고 자기가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건 아니잖아? 그리고 한참 더 나이드셔서 노쇄해지시면 자기가 케어를 해야할테니까 그때 자기가 할 수 있는걸 다 하면 된다고 봐. 지금은 자기 삶에 충실할때라고 생각해. 인정을 바라고 그분들의 마음을 얻고, 딸이라면 이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신을 가두고 자기의 삶을 희생시키지 말고 오직 자기의 소중한 삶만을 먼저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그런적 별로 없을거잖아.

    2024.05.05좋아요1
    • user thumbnale
      숨어있는 자기글쓴이

      고마워 따뜻한 말이 많은 위로가 되었어 조금 더 나를 챙겨볼게

      2024.05.05좋아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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