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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퀴리의 썬데이 루틴

마리 퀴리의 썬데이 루틴

남편의 장례식 다음 날, 연구실에 가는 마음

4min
마리 퀴리의 썬데이 루틴
☀️
SUNDAY ROUTINE 여성 역사의 달, 위대한 여성의 이야기. 마리 퀴리일요일 일정을 확인하고 함께 경험해보세요.

과학자에게 가장 완벽한 하루는 무슨 모습일까요?

1906년 어느 일요일, 파리에서 마리 퀴리가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장례식을 치른 다음날에도 평소처럼 가족을 돌보고 과학에 심취하는 그의 하루는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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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00 출근 준비

파리의 분주한 아침이 시작됩니다. 저는 잠시 어제의 이별을 생각해요. 지난 11년간 함께 아침을 맞았던 그 사람은 지금 여기 없습니다.

나의 남편. 피에르 퀴리는 묘지에 누워 마지막 잠을 자고 있겠죠. 하지만 오래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장례식 다음 날에도 해야 할 일이 많아요. 우리가 함께 시작했던 많은 것들을 이제 나 홀로 완성해야 할 테니까요.

서둘러 딸들을 씻기고 옷을 입혀줍니다. 아이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온전히 이해하는지는 모르겠어요. 이렌은 아직 9살, 이브는 겨우 2살. 이들을 돌봐줄 유모가 집에 오면 바로 연구실로 출근할 거예요.

이런 저를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친한 동료들 조차 “아이들에게 더 신경을 쓰라”고 충고할 때가 있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말도 들어봤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제게 어떤 영향도 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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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00 연구, 연구, 연구

연구실에 도착하면 비로소 제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분명히 깨닫게 되죠. 남편이 있었을 때와 똑같이, 오늘도 이곳에서 하루 종일 연구를 진행할 거예요. 그가 평소에 말했던 대로, 저는 그 없이도 계속해서 제 일을 해나갈 겁니다.

빛도 제대로 들지 않고, 변변한 가구도 없는 그야말로 창고 같은 공간을 보면 놀랄지도 몰라요. 여기서 그런 위대한 일을 했다고? 번듯한 학교 건물 한 귀퉁이에 폐가처럼 붙어있는 이 동굴은 한 때 의대생들의 해부실로 쓰였다고 해요. 이곳을 방문했던 화학자는 마구간이나 감자저장고 같다고도 했죠.

하지만 이곳 마당에 수북히 쌓여있는 건 감자가 아니라 ‘피치블랜드’라는 광석이에요. 저는 이 어마어마한 광물들을 이리저리 옮기고, 뜨거운 불에 녹이고, 쇠막대기로 휘저으며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했어요. 기존의 화학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성질을 나타내는 물질이었죠.

그리하여 ‘방사능’이라는 단어가 처음 생겨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이 낡고 허름한 곳에서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미래의 과학이 향하게 될 새로운 길을 발견한 거예요.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도 미처 알기도 전에 어린아이처럼 뛰면서 기뻐했어요. 이제 저는 그 길에 첫 질서를 확립해나가야 합니다. 이번에는 도와주는 이 없이. 내내 혼자서.

13 : 00 짧은 티타임

왜 사람은 꼭 먹어야 하는 걸까요? 저는 먹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걸 싫어해요. 학생 때는 끼니도 거르고 공부에 몰두하다가 기절한 적도 몇 번 있었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버터를 바른 빵과 뜨거운 차예요. 연구실에 놓인 난로 옆에 둔 차로 추위와 허기를 달래요.

남편과 함께 차를 마실 때면 우리는 마치 꿈을 꾸는 사람들처럼 홀린 듯이 실험에 관해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관심사는 하나 뿐이었고 기가 막히게 일치했죠. 과학에 대한 순수하고 깊은 열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건 그렇게 근사한 일이었어요.

혼자 마시는 차는 별로인 것 같아서 곧 다시 일어납니다. 유모가 퇴근하는 5시까지 연구실에서 마쳐야 할 일도 아주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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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00 아이들과의 산책

연구실에서의 시간은 평온하지만 매우 빠르게 지나가요. 어느새 5시가 가까워져 대충 정리하고 집으로 갑니다. 지난 몇년 간 저는 극단적으로 단순한 삶을 살아왔어요. 과학 연구와 가족 외에 아무것도 없었죠.

친구도 만나지 않고, 극장에 가지도 않아요. 유행하는 공연이 무엇인지도 전혀 몰라요. 그래도 정말 행복하고 충만했어요. 늘 똑같은 생활이 저를 기쁘게 했습니다.

이전과 똑같이, 아빠만 빠진 채로 가족들이 모여 식사하고 짧은 휴식 시간을 갖습니다. 집 앞 거리를 산책 삼아 걷는데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3년 전 저와 남편이 노벨상을 받았기 때문이겠죠. 프랑스 정부도 애도의 뜻으로 연금을 지원해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습니다. 저 혼자서도 우리 가족을 완벽하게 보살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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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 00 라듐과 함께 잠들기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는 다시 또 연구에 몰입합니다. 실험한 내용들을 정리하고 관련된 책과 논문들을 파헤치다 보면 새벽의 푸른 별이 창문까지 찾아 오는 줄도 모르게 되죠. 과학에 헌신하면서 건강하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 말을 누구보다 공감할 그 사람을 생각하며 일기를 쓰고 너무 늦지 않게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침대맡 전등 아래, 라듐을 넣어둔 병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새어 나와요. 다시 언제라도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된 작은 실험실이죠. 저는 과학자입니다. 가장 가까운 동반자이자, 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사람을 잃어버린 이런 밤에도 여전히 과학자입니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덤을 채우고 그 위에 꽃다발을 두었다. 모든 것이 끝났고 피에르는 땅속에서 마지막 잠을 자고 있다. 정말로 모든 것, 모든 것, 모든 것이 끝났다.

나는 하루 종일 실험실에서 일하고 있다. 할 수 있는 게 이것 뿐이다.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이제 내게 남은 개인적인 기쁨은 연구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이 연구가 성공하게 된다면…아니. 당신에게 그걸 알려줄 수 없는데 어떻게 견딜 수 있겠어.

- 1906. 마리 퀴리의 일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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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따라하고 싶은 마리 퀴리의 썬데이 루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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