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마음 속에는 ‘질투쟁이’라는 여자가 있었어요. 사납고 못된 질투쟁이는 제 인생의 힘든 시기에 뭔가 위협을 느낄 때마다 고개를 들었죠. 그때 제게는 애인이 있었어요. 분위기가 아주 좋아서 평소에는 기분이 좋은 상태였는데, 자꾸만 질투쟁이가 튀어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질투쟁이에게 질문을 던져 봤어요. 뭘 원하니? 왜 날 괴롭히는 거야? 널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해?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 안의 질투를 없애 버리려고 하는 건 그리 도움이 되는 방법이 아니었어요. 섹슈얼리티 교육 전문가이자 트라우마 중심 상담가인 에이다 맨덜레이는 그 대신 “질투와 친구가 되면 아주 유용해요.”라고 말합니다.
질투는 맹렬하고 조급하며 끔찍한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의 경험 뒤에는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 주는 중요한 단서가 숨어 있어요. “탐색이 필요한 지점이라고 확신합니다.” 상담가이고, National Queer and Trans Therapists of Color Network 회원이자, 유색인종 여성을 위한 비영리 단체로서 전인적 건강에 대한 국가적 대화를 촉진하고 있는 WOCTribal의 공동 창립자인 미샤 스래셔의 말입니다.
파트너가 하나건 열이건, 사람은 대부분 질투를 경험합니다. 아프도록 강렬한 이 감정은 솔직히 골칫거리이긴 하지만, 동시에 아주 인간적인 감정이기도 해요. 스래셔와 맨덜레이는 질투라는 이름의 녹색 눈을 가진 괴물이 찾아오는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스스로의 욕구를 보다 잘 충족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라고 조언합니다. 이 글에서는 내 안의 질투와 친구가 되고, 파트너와 더욱 깊은 친밀감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함께할 동료로 포섭하기 위한 팁을 소개합니다.
질투,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
제일 먼저 한 가지만 확실히 하고 넘어갈게요. 질투는 아주 정상적인 감정입니다. 부끄럽게 여길 것도, 나쁘게 볼 것도 아니고, 질투를 한다고 남들보다 열등한 것도 아닙니다. “느끼면 안 되는 감정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맨덜레이의 말이에요. 중요한 것은 질투를 느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거예요. 의견이 분분한 주제입니다. 질투는 친밀한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믿음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이성애중심적 가부장제의 기본이 되는 의무적 독점 관계(‘나의 것’인 단 한 사람만을 파트너로 삼고 그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질투와 소유욕은 헌신적 사랑의 증거로 로맨틱하게 받아들여지곤 합니다.
질투는 파트너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백지 수표가 아니지만, 발달이 덜 된 사람이라는 증거도 아닙니다.
비독점적 관계를 지향하는 많은 이들이 파트너의 섹슈얼리티를 소유하거나 가질 자격이 있다는 발상에 멋지게 의문을 제기해 왔어요. 파트너를 감시하는 건 귀여운 게 아니라 강압적인 거라고요. 하지만 맨덜레이는 비독점적 관계를 실천하는 이들 중 일부는 자칫 타인이 질투를 느낀다는 이유로 낙인을 찍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질투는 나쁜 것이고 뇌 속에 남은 독점적 관계의 잔재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죠.” 맨덜레의 말이에요. 그러나 질투는 파트너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백지 수표가 아닌 동시에, 발달이 덜 된 사람이라는 증거도 아닙니다. 맨덜레이는 질투를 “경고 신호나 증상”으로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질투를 무시하거나 생각 없이 질투가 시키는 대로 따를 것이 아니라, 질투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질투를 받아들이는 연습
질투를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내보이지 말고 날것 그대로 느낄 시간을 충분히 가지세요. 스래셔는 바로 지금 나의 신체적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으라고 조언합니다. 심호흡을 하고 일어나거나 앉는 등 자세를 바꿔 보세요. 파트너에게 질투를 쏟아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 전에 일단 5분 아니면 10분 동안 다른 활동에 집중하기로 스스로와 약속하세요. 스래셔는 온수 샤워를 추천합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면 마음이 바뀔 거예요.”
따뜻한 차를 끓여 맛과 향에 집중하거나, 기분이 좋아지는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도 좋아요. 그토록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건 힘든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차 나아진답니다. 질투와 씨름할 때 비독점적 관계를 지향하는 사람이 가지는 명확한 이점이 한 가지 있죠. 바로 이런 기술을 의식적으로 연습할 기회가 많다는 거예요. “이 근육은 연습을 통해서만 강해집니다.” 스래셔의 말이에요.
질투를 ‘재료’ 단위로 나누기
맨덜레이는 질투를 케이크에 비유합니다. 케이크 전체가 아니라 “달걀과 밀가루와 우유와 설탕을 들여다봐야 합니다.”라면서요. 다양한 감정이 질투를 구성하는 재료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촉발되는 감정은 사실 공포입니다.” 스래셔는 말합니다. 파트너를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나 내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지 모른다는 공포 등이 작용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서 두려울 수도 있어요. 경쟁심을 느끼거나 공평/공정에 대해 걱정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가령 파트너가 나 말고 다른 파트너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느낀다거나요. 아니면 통제욕일 수도 있죠.
이런 요소의 기저에는 대부분 결핍에 대한 공포가 깔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이나 자원, 사랑이 부족할까 걱정하고, 또 스스로가 부족할까 걱정합니다.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 은행에 들어 있는 돈이 제한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맨덜레이는 말합니다. 하지만 결핍에 대한 공포는 과거에 무언가를 박탈당하거나 버려진 경험, 그리고 구조적 인종 차별이나 성 불평등으로 인해 내재화된 부정적 메시지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스래셔는 질투가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과거 질투가 문제가 된 시점의 기억을 훑어보세요.”라고 말합니다. 어린 시절 음식이나 부모의 돌봄이 충분하지 않았던 경험, 외도를 나를 조종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던 파트너에게 학대를 당한 경험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하네요.
사람들은 시간이나 자원, 사랑이 부족할까 걱정하고, 또 스스로가 부족할까 걱정합니다.
권력 관계 분석
나나 파트너가 질투를 경험하고 있는 경우 그 상황에 작용하는 권력과 특권, 억압에 대해 분석해 보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우리는 모두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자라며 소유욕이 곧 사랑이라고 교육을 받았죠. 하지만 이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정체성과 물질적 조건에 따라 달라요.
“많은 이들의 질투가 특권 의식에서 나옵니다. 특히 사회적 권력을 가지는 데 익숙한 이들의 경우 더욱 그래요.” 맨덜레이의 말입니다. 남성과 남성으로 보이는 이들은 성적인 지배를 사회적 권력과 동일시하도록 사회화되었기 때문에 파트너의 성과 감정, 가사 노동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는 인식을 표현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어요.
독점적 관계에서는 이 표현이 파트너의 몸과 행동을 단속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죠. 한편 맨덜레이는 비독점적 관계의 경우 이 표현이 ‘음경은 하나만’이라는 규칙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시스젠더 남성이 자신의 여성 파트너가 다른 여성과만 파트너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명령하는 상황 말이에요(물론 여성에게도 음경이 있을 수 있지만요). 물론 파트너십은 명령하고 명령받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나아가는 관계랍니다.
질투는 불평등을 보여 주는 것일 수도 있어요. 나와 아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질적 부분을 파트너에게 의지하고 있다면 질투는 파트너가 한정된 자원을 나의 동의 없이 다른 상대에게 분배하는 데 따른 합리적 자기 방어 반응이에요.
질투를 탐색하다 보면 의무적인 독점 관계에 긍정적인 방식으로 도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집합성보다 독점성에 가치를 두죠. 하지만 이런 믿음 때문에 공동체를 통해 더 잘 충족할 수 있는 욕구에 대해서도 단 하나의 파트너십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사랑을 여럿이 공유한다고 해서 내가 받을 사랑이 줄어들지는 않아요. “그 전에 불이 붙어 있던 초로 다른 초를 켠다고 해서 처음 초의 불이 갑자기 꺼지지는 않잖아요.” 맨덜레이의 말이에요.
근본적 원인 해결
질투와 친구가 되었다면 이제 어려운 부분이 기다리고 있어요. 질투를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것 말이죠. 질투 케이크의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해결책은 비교적 간단할 수도 있답니다. 질투가 알고 보니 파트너의 문제보다는 내가 일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 때문이었다면 직업적 성공에 투자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파트너가 나 말고 다른 파트너를 더 자주 만나는 이유가 그 사람이 아픈 부모님을 돌보는 것을 도와 주기 위해서였다면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좀 편해질 수 있을 거예요. 아니면 파트너와 대화를 통해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기로 합의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질투는 관계 속 보다 깊은 문제를 알려 주는 신호일 수도 있어요. 파트너가 거짓말을 하거나 내 경계선을 침범하거나 동의 없는 행동을 한다거나, 아니면 폴리아모리 등 지금 이어 가고 있는 관계가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이 경우 질투는 그 관계를 크게 바꾸거나 아예 끝낼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맨덜레이는 질투 때문에 관계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일상을 즐길 수 없다면 그건 위험 신호라고 말합니다. 질투에 대해 대화해 보려고 하는데 파트너가 무시하거나 깔보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위험해요. 반면 파트너가 “관심을 보이며 질문을 하고, 함께 앉아 해결책과 전략을 제시한다면 그린라이트입니다.”라고 맨덜레이는 덧붙입니다.
제 얘기를 다시 하자면, 결국 제 안의 질투쟁이와 대화를 나눴답니다. 그리고 질투쟁이가 제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질투쟁이는 그때 사귀던 사람이 저를 착취적으로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던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질투쟁이의 느낌이 맞았다는 걸 깨닫고 관계를 끝낼 수 있었어요. 제 질투는 저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제가 성장하도록 돕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도 질투는 그리 반가운 손님이 아니지만, 그래도 질투쟁이가 저를 찾아올 때면 저는 질투쟁이의 자리를 준비해 두고 이야기를 들어 보곤 한답니다.